한국어

평양시청암동토성에 대한 발굴조사

(평양 1월 15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연구집단에서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청암동토성에 대한 조사발굴 및 연구사업을 진행하여 이 성의 성격을 새롭게 해명하였다.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에서는 청암동토성에 대한 연구사업을 더욱 심화시킬 목적으로 고고학,력사학,민속학 부문의 교수,박사들을 비롯하여 권위있는 전문가들로 연구집단을 꾸리고 주체84(1995)년 12월부터 주체86(1997)년 4월까지의 사이에 토성의 서쪽성벽과 성안의 서부지역에 대한 조사발굴 및 연구사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하였다.그에 의하면 성벽은 크게 아래성벽과 웃성벽 2개 층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아래성벽은 단군조선시기의것이고 웃성벽은 고구려시기의것으로서 3차례 고쳐쌓았다는것을 밝혀냈다.단군조선시기의 성벽의 크기는 밑너비가 약 10메터,높이가 약2.5메터이다.성벽을 쌓았던 흙속에서는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인 반달칼,돌창,팽이그릇쪼각들이 나왔다.성안의 서부지역에서는 돌도끼,돌단검,돌그물추,별도끼쪼각,피홈이있는 돌단검,고대시기의 벽돌,기와쪼각들이 나왔다.이 지역에서는 고구려시기의 건물터유적이 발굴되였다.건물터유적에서는 세개의 건물기초와 토방돌,회색기와,붉은색기와,기와막새쪼각들이 발굴되였으며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고구려시기건물벽화가 발견되였다.8잎꽃무늬,세잎꽃무늬,고사리무늬 등 장식무늬가 기본으로 되여있는 이 건물벽화의 특징은 금분을 많이 사용하여 그린것이다.학자들은 발굴된 성벽의 축조방법과 축조년대,유물의 성격 그리고 기타 자료들로 미루어보아 이 성이 단군조선시기의 수도성이였을것이며 고조선전기간 중요한 성으로 존재하였을것이라고 보고있다.그들은 청암동토성이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처음으로 옮긴 3세기중엽의 왕궁성이였을것이라고 보고있다.이번 청암동토성에 대한 조사발굴 및 연구사업결과는 단군조선과 고구려 력사를 보다 과학적으로 체계화할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줌으로써 민족사연구에 커다란 기여로 된다.또한 그것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가 발전하여왔음을 다시금 뚜렷이 실증하고있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rapidtravelchai/9655027684/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