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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전> 중앙위원회 진상공개장/미제의 집단학살만행폭로

(평양 11월 2일발 조선중앙통신)서울에서의 <구국의 소리>방송에 의하면 10월 28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중앙위원회는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이 감행한 집단학살만행을 폭로하는 진상공개장을 발표하였다.진상공개장은 다음과 같다.미제침략군과 <국군>은 지난 1950년 북침전쟁의 불을 질렀다가 인민군의 호된 반격에 밀려 38선이남지역으로 패주하면서 짐승도 내을 붉힐 치떨리는 량민학살만행을 감행했다.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량민학살은 그 대표적사례이다.1950년 7월 25일 미1기갑사단 7기갑련대는 영동군 로근리일대에서 마을의 집집을 발칵 뒤져 사람들을 모두 끌어내고는 일본인통역을 내세워 <공산군이 내려오면 다 죽인다.미군이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줄터이니 지금부터 남쪽으로 출발하라>고 명령했다.미군은 로인,녀성,어린이들로 뒤섞인 피난민행렬을 얼마간 끌고가다가 모두 도로밑 강변에 내려가 엎드리게 하고는 머리를 드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총으로 쏘아죽였다.미제야수들은 그 다음날 또다시 피난민행렬을 끌고가던중 그들을 도로와 린접한 철길에 올라서게 하고는 무전기로 저들의 비행기를 호출해 무차별폭격을 가함으로써 100여명을 학살했다.여기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폭격을 피해 철길밑에 있는 굴다리속에 모여들자 이 미제흡혈귀들은 굴다리가 내려다보이는 량쪽야산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사흘간이나 사격을 퍼부어 무려 300여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치떨리는 살인만행을 감행했다.미제야수들이 로근리일대에서 무참히 학살한 사람들의 수가 모두 400여명에 달한다는것이 당시 학살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이다.미제야수들과 <국군>살인악당들이 7월 4일 하루동안 충주에서 학살한 주민수만 해도 무려 739명에 달하며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의 기간에 경기도 수원에서 학살한 주민들의 수는 1,146명이나 된다.1950년 7월 <령광작전>으로 불리던 군경의 전라남도 방어작전이 실패하자 <라주부대>는 패주하면서 인민군대로 가장하고 해남과 완도지역에서 인민군대가 왔으니 환영나오라,안나오면 반동으로 취급할것이라고 위협한 다음 중학교마당에 나온 무고한 량민들을 짐승사냥하듯 닥치는대로 학살해 해남읍과 완도읍을 시체더미로 만들었다.그런가하면 1950년 7월초부터 9월말까지의 기간에 부산에서 특무대의 야수들은 무려 4,832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형무소에서무참히 학살하고는 그 시체들을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신어산골짜기,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삼박골짜기,해운대구 송정동 구덕포와 광어촌사이의 골짜기 등에 분산매장하고 돌에 묶어 부산 오륙도와 영도바다에 수장하는 치떨리는 만행을 감행했다.바로 그때 통영군,거제군,충무시,마산시 등 경상남도 해안일대에서는 1만명이상의 량민들이 학살되여 바다에 수장되였다.1950년 6월부터 8월기간에 패주하던 군경무리들은 미군의 지시하에 경상북도 문경군,경기도 리천군,안성군,전라북도 전주시,광주시,대구시,제주도를 비롯한 38선이남의 전지역에서 수천명을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당시 패주하는 흡혈귀,살인귀들에 의해 서울에서 1만여명,경기도평택에서 600여명,안성에서 500여명,안양에서 400여명,춘천에서 3만여명,충청북도 청주에서 2,000여명,충주시에서 2,060여명,충청남도 공주에서 600여명,부여에서 2,000여명,조치원에서 158명,대전에서 8,644명,전라북도 전주에서 4,000여명,군산에서 400여명,광주에서 3,000여명의 무고한 량민들이 학살되였다.심지어 미제야수들은 전투기까지 동원해 평화적주민들을 무차별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마구 학살했다.미제야수들은 서울에서만도 1950년 7월 16일 수십대의 폭격기를 동원해 1,096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했고 9월 2일부터 4일사이에도 폭탄투하와 기관총사격으로 79명의 시민들을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미제흡혈귀들은 8월 5일 폭격기 8대를 동원해 전라북도 전주시중앙동,다가동지역에 대한 무차별폭격을 가해 158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였는가 하면 8월 21일에는 <B-29>폭격기 12대와 전투기 8대를 동원해 서울시에 대한 폭탄,소이탄투하,5차에걸친 저공비행기총소사로 897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일삼았다.7월 20일부터 30일까지의 11일사이에 미제침략군폭격에 의해대전시,춘천시,충청북도 피산군,청주시,전라북도 익산군,김제군에서 무참히 학살된 주민들의 수는 무려 1,153명에 달한다.또한 1950년 8월 20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의 민간인사살을 비롯하여 8월 한달기간에 미제야수들의 무차별폭격과 기총사격으로 인해 룡인군,녕월군,인천시,전라북도 익산군,경기도 양평군,충청남도 대전시,연기군,대덕군 등지에서 학살된 무고한 사람들의 수는 무려 2,800여명에 이른다.미군과 <국군>은 6.25전쟁 때 38선이남 재강점지역들에서 <공비토벌>,<통비분자숙청>이라는 명목을 걸고 또다시 수많은 량민들을 학살했다.전라남도 함평량민학살사건도 그 한 사례이다.<함평은 빨간물이 들었다.모조리 불사르고 죽이라>는 미군고문의 명령을 받은 <국군> 제11사단소속 5중대는 1950년 12월 5일 함평군 월야면 정산리 동촌마을을 불의에 기습하여 20분도 안되는 사이에 50여가구의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고 로인들과 부녀자들이 대부분인 주민들을 논바닥에 끌어내여 기관총과 소총으로 모두 사살했다.동족살륙에 미쳐버린 이 살인악당들은 그로부터 이틀후인 12월 7일에는 월야면 월악리의 내동,못갓,순촌,송계,동산,괴정 등 6개 마을을 기습포위하고 집집마다 불을 지른 다음 <도로복구공사하러 가니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나오라,안나오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며 주민들을 끌어내여 무차별 총포사격을 가했다.그러고도 모자라 중대장이란자는 시체더미우에 올라서서 <살아있는 사람은 꼭 살려주겠으니 겁먹지 말고 일어서라>고 하고는 50여명의 주민들이 일어나자 기관총사격으로 사살한 다음 또다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질렀다.도로복구공사하는줄 알고 삽과 괭이를 들고 나왔던 월야면의 주민 300여명은 <국군>에 의해 이렇게 무참히 학살당했다.이 살인부대는 다음해인 1951년 1월 12일 함평군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을 불의에 기습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길가에서 230여명이나 사살하였으며 라산면 우치리와 성대마을에서도 무차별살륙을 감행했다.당시 학살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생존자들과 목격자들은 군당국이 함평에서 사살한 1,000여명의 민간인들을 <공비>사살수자로 조작하고 마을들에서 회수한 괭이와 삽을 <공비>로부터 로획한 무기수자로 둔갑시켜 여론화했다고 증언했다.미군과 <국군>은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에서도 수많은 주민들을 학살했다.서울에서는 <빨갱이수색참모부>를 조작하고 거리의 곳곳에 <검문소>들을 설치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학살하였다.또한 <부역법>이라는 살인악법까지 만들어놓고 친척이 의용군에 나갔거나 조금이라도 인민군대에 방조를 준 사람들은 모조리 검거투옥하고 그중 7만 2,390명을 고문학살했다.미제살인귀들은 서울에서 12번이나 량민들의 머리가죽을 벗겨내 <기념품>으로 보관하는 소름끼치는 야만행위도 서슴지 않았다.1950년 9월 16일 인천항에 상륙한 미제야수들은 <국군>을 사촉하여 첫 하루동안에 1,300여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데 이어 9월 28일부터 11월 13일까지의 기간에 5만 5,909명의 주민들을 <공산분자>로 매도해 검거투옥학살하는 만행을 꺼리낌없이 일삼았다.인천시의 금곡동지구에서만도 1,500여명의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2,700여명이 학살되였으며 경기도 김포군일대에서도 1,000여명이 생매장당했다.사람잡이에 이골이 난 미제승냥이들은 <후방치안확보>를 구실로 여러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해 도처에서 대규모적인 학살만행을 감행했다.미제야수들에 의해 1950년 10월 10일에는 전라북도 남원군주천면 어현리와 덕치리에서 60여명의 청장년들이 학살되고 11월에는 경기도 고양시일대에서 1,000여명의 주민들이 집단학살당했으며 1951년 2월에는 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에서 150여명의 주민들이 살해당했다.미제침략군전투기의 기총사격으로 11월과 12월사이에도 충청북도 재원군,청주시,충청남도 대덕군,전라북도 군산시 등지에서 수백여명의 량민들이 살해되였다.1951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에서도 300여명에 달하는 어린이들과 부상자들이 미군의 폭격에 의해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미군의 사주하에 <국군>살인악당들은 1950년 10월초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 금정굴에서만도 1,000여명의 무고한 량민들을 집단학살했으며 1950년 12월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청웅면지역에서 마을들을 모두 불사르고 805명을 잔악하게 학살했다.그리고 <국군> 제11사단 20련대의 야수들은 1950년 12월 22일부터 1951년 5월 10일사이의 기간에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해리면,공음면,상하면,무장면에서 어린이,부녀자,로인 1,387명을 학살하고 1950년 10월부터 1952년 6월기간에는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복흥면,동계면에서 1,028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양키침략자들과 <국군>살인마들이 6.25전쟁 때 이땅에서 감행한 량민학살만행을 일일이 다 렬거하려면 끝이 없다.1951년 9월 15일자 미국의 유피통신이 밝힌것처럼 1950년 6월 25일부터 1951년 여름까지의 기간에만 해도 이남에서 학살된 량민은 무려 100만명이상에 달한다.지난 6.25전쟁시기 미제침략군과 <국군>이 이땅에서 감행한 치떨리는 량민학살만행은 악명높은 살인마 히틀러나치스들의 만행을 훨씬 릉가하는 전대미문의 대죄악이다.전국민은 쌓이고 맺힌 원한과 분노를 터쳐 거세찬 항전으로 철천지 원쑤,살인귀 미제침략군을 이 땅에서 철거시키고 그를 비호하고 영구주둔을 애걸하는 김대중매국<정권>을 청산하고야 말것이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fljckr/260319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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