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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전선 비망록 미제의 남조선인민투쟁 탄압죄행을 폭로단죄

(평양 4월 6일발 조선중앙통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6일 다음과 같은 비망록를 발표하였다.

인류력사는 착취와 압박,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여 일떠선 인민대중의 정의로운 투쟁과 그를 잔인하게 진압한 외래침략자들과 압제자들의 살륙만행을 수많이 기록하고있다.
그러나 력사의 어느 갈피에도 남조선에서와 같이 식민지지배와 썩은 정치, 낡은 사회제도를 반대하여 대중적인민봉기와 항쟁들이 끝없이 일어난적은 없었으며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처럼 무고한 인민들을 야만적으로 탄압하고 온 대지를 인간도살장으로 만든 례는 찾아볼수 없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남조선인민들의 성스러운 반미반파쑈민주화투쟁사에 빛나는 장을 기록한 대중적인 4.3인민봉기 57돐과 영웅적인 4.19인민봉기 45돐, 광주인민봉기 25돐, 6월인민항쟁 18돐을 맞으며 남조선에서 거세차게 일어난 봉기와 항쟁들을 야수적으로 진압하고 인민대중을 잔인하게 살륙한 미제의 죄행을 폭로단죄하기 위하여 비망록을 발표한다.
4.3인민봉기와 제주도를 피로 물들인 살인마
사람들은 1948년 4월 3일 우리 나라의 최남단 제주도땅에서 식민지지배와 나라와 민족의 영구분렬을 꾀한 미제와 리승만역도의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의 불길을 지펴올린 제주도인민들의 영웅적인 무장봉기를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세월은 흘렀어도 《피의 섬》이였던 제주도는 오늘도 력사의 증견자 한나산과 더불어 정의의 애국항전에서 무참히 희생된 7만여명 제주도인민들의 피맺힌 절규를 담아 미제살인마들의 천인공노할 죄악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오랜 세월 외세의 압제하에서 가난에 쪼들리며 인간의 참된 삶과 자유를 짓밟혀온 제주도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제의 패망과 8.15광복의 기쁨은 더없이 컸다.
그러나 광복으로 하여 부풀어오른 희망과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제주도땅에 근로인민이 주인된 새 세상을 일떠세울 열망으로 끓었던 인민들의 머리우에는 또다시 검은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남조선에 피묻은 군화발을 들여놓은 미제는 강점 첫날부터 포악한 군정을 선포하고 인민들의 총의에 의하여 세워진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하였으며 《단선단정》조작책동에 달라붙었다.
제2의 식민지통치를 몰아오려는 미제의 책동은 온 남조선인민들과 함께 남달리 자주독립정신이 강했던 제주도인민들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냈다.
하기에 미국무성의 외교문서까지도 남조선에서 미군정에 대한 증오가 《공공연히 증대》되고있으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미군정의 조치는 《맹렬히 비판받고있다.》고 개탄하였던것이다.(《미국외교문서》조선편 1946년)
폭정은 항거를 낳는 법이다.
1947년 3월 1일 미군의 발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3.1인민봉기기념시위사건》을 분수령으로 하여 미제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안고 용약 투쟁에 떨쳐나선 제주도인민들은 드디여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나산 연봉에서 반미항거의 총성을 울렸다.
이것은 민족의 영구분렬을 꾀하는 《단선단정》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결사의 항거인 동시에 또다시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려는 미제에 대한 복수의 선언이였다.
《매국단선단정을 절대반대한다!》, 《미제의 주구를 타도하라!》, 《주권은 인민위원회에로!》, 《조선통일 만세!》의 웨침소리는 삽시에 온 제주도땅을 항쟁으로 끓게 하였다.
격노한 봉기군중은 인민유격대를 편성하고 드세찬 공격전을 벌려 파쑈폭압기구들과 《선거사무소》들을 들부셔버렸으며 제주도에서의 《5.10단선》놀음을 파탄시켰다.
제주도인민들의 결사의 항전에 류혈탄압으로 대답해나선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조기진압》을 떠벌이면서 천인공노할 대살륙전을 폈으며 그 앞장에는 악명높은 살인마 미군정장관 딘이 섰다.
이 자는 처음부터 《미국은 제주도땅이 필요하지 제주도민은 필요치 않다. 제주도민을 다 죽이더라도 제주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껄이면서 《전 섬에 휘발유를 퍼붓고 모두 죽여도 좋다》는 초토화명령을 내렸으며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가능한한 빨리,깨끗이 해치우라》는 폭압지령을 제주도지역 미군총사령관 브라운에게 하달하였다.(남조선도서 《4.3은 말한다》2권,《움직이는것은 무엇이든 쏴라》)
이것은 200여년전 앵글로-쌕슨족의 해적떼들이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토착원주민 인디안들을 모조리 멸족시킨 피비린내나는 도살력사를 제주도에서도 재현하려는 미제의 본성을 그대로 말해주는 살인명령이였다.
제주도를 《생명이 없는 섬》으로 초토화하기 위한 작전에 미제는 중무장한 수만명의 무력과 테로단, 비행기와 함선까지 동원하였으며 살륙에 내몬 《군장교들에게는 작전수행후 미국이민알선과 함께 10만US$의 돈을 주겠다》고 유혹하면서 살인 《경쟁》에로 부추겨댔다.(남조선잡지 《력사비평》 20호)
미제의 살륙만행은 그 방법에 있어서도 인간도살의 극치를 이루었으며 무자비하게 불태워죽이고 굶겨죽이고 생매장해죽이는 이른바 《3광작전》과 《3진작전》,《투망작전》 등 미군의 온갖 잔인한 살인만행에 의하여 《신비의 섬》,《환상의 섬》으로 불리우던 제주도는 순식간에 《피의 섬》,《생명이 없는 섬》으로 변하였다.
이 처참한 살륙만행에 대해 남조선출판물들은 《제주도의 거의 모든 마을들이 초토화되여 피바다,불바다에 잠겼으며 제주도민 30만명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7만여명이 무참히 학살되였다. 전쟁상태가 아닌 제한된 공간지역에서 이와 같은 류혈사가 벌어졌던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단죄하였으며 현지에 갔던 《유엔림시조선위원단》까지도 제주도참변과 관련한 보고서에서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제주도에서는 불과 얼마 안되는 기간에만도 3만 5,000여명의 주민들이 살해되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다.》고 썼다.(남조선도서 《4.3은 말한다》 2권)
영국신문 《런던 타임스》도 미군이 강점하고있는 남조선에서 《민주주의를 찾는것은 시궁창에서 장미꽃을 찾는것과 같다.》고 양키들의 죄행을 고발하였다.
그러나 미제는 그것이 마치도 동족간의 류혈참극인듯이 사태의 진실을 뒤집어엎으면서 책임을 회피해나섰다.
범죄는 언제나 범죄대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남조선의 《MBC》방송은 제주도인민대학살만행을 담은 미국무성의 극비문서내용을 전하면서 《실제로 미군정장관이 제주도를 방문한뒤 강경진압이 시작되였다. 미국은 책임을 면할수 없다.》고 폭로하였으며 일본잡지 《세까이》도 《미국은 남조선주둔 미군사고문단 초대단장 로버트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직접 토벌전을 벌리게 하였다.》고 까밝혔다.
그러나 남조선주재 초대미국대사 무쵸라는 자는 《항의자들을 과단성있게 처리한것은 현명한 방책으로 된다. 비상수단으로써 진압을 유효케 한것은 칭찬할지언정 비난할 여지가 없다》고 비호해나섰다.
제주도를 피로 물들인 대학살만행은 그 잔인성과 악랄성으로 하여 세상을 경악케 하였으며 미제야말로 남조선인민들의 《해방자》,《보호자》가 아니라 강점자,살인자, 인두겁을 쓴 야수들이라는것을 폭로해주었다.
참으로 제주도 4.3인민봉기는 다시는 식민지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남조선인민들의 불굴의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한 의로운 장거였으며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조국통일을 위한 제주도인민들의 투쟁사에 빛나는 장을 기록한 사변이였다.
하기에 남조선잡지 《력사비평》 25호는 《4.3의 류혈극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의 죽음으로만 끝난 과거사가 아니며 제주도민들에게 있어서 4.3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내출혈>을 일으키고있는 력사이자 현실》이라고 썼다.
제주도인민들이 발휘한 영웅적 4.3봉기의 정신은 오늘도 제주도를 외세가 없고 민족자주의 넋이 움트는 평화의 섬으로 만들며 반미자주와 평화,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고무해주고있다.
4.19인민봉기와 파쑈적인 《군사정변》조작의 장본인
오늘 45돌기의 년륜을 새기고있는 영웅적 4.19인민봉기는 남조선에서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반미반파쑈항전의 새봄을 안아왔다.
자주,민주를 위한 제주도인민들의 4.3인민봉기가 있은 때로부터 1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나 남조선에서 달라진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미제는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거머쥐고 예속적인 《조약》과 《협정》들을 강요하여 남조선을 식민지로, 자주와 민주가 말살되고 무권리만이 지배하는 인간생지옥으로 만들었다.
당시 남조선실태에 대하여 《동아일보》는 리승만《정권》하의 12년은 남조선을 《중환》에 걸리게 하였을뿐이며 《4천년래의 민생고를 가져온것뿐》이라고 폭로하였으며 서울에 왔던 미국카톨릭교원호단체대표단은 빈민들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방문한 아시아나라들중에서도 남조선의 경우가 제일 딱한 형편이였다고 실토하였다.
강산은 분명 내 강산이여도 《남이 사는 내 나라》, 겨레는 있어도 민중을 위한 참다운 정치가 없고 예속과 매국이 살판치는 썩어빠진 사회현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더는 참을수 없었던 남조선인민들은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전인민적항쟁에 일떠섰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의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은 리승만《정권》의 부정선거를 반대하여 《선거를 새로 하라!》,《리승만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웨치며 항쟁의 첫 봉화를 올렸다. 그들은 《개표장》으로 되여있는 《시청》을 포위하고 《선거》의 무효를 주장하며 격렬한 시위투쟁을 벌렸다.(남조선 《동화통신》 1960.3.15)
마산에서 지펴올린 투쟁의 불길은 삽시에 서울과 부산, 광주와 대구,인천 등 남조선전역으로 타번졌다.(서울발 미국AP통신 1960.4.12)
4월 19일 드디여 남조선전역에서 전민항쟁의 불길이 타올랐다. 이날 투쟁의 앞장에 선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남조선의 각계각층 광범한 대중이 매국역적 리승만도당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에 총궐기해나설것을 호소하는 《4.19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나어린 김주렬학생의 피값을 받아내자!》, 《리승만정부를 타도하자!》의 구호를 힘차게 웨치며 고려대학교와 건국대학교,동국대학교 등 서울시내의 대학생들이 앞을 다투며 일제히 합세해나섰다.(남조선도서 《4월혁명》)
이에 질겁한 미제는 4월 19일 즉시 《특1호》를 발동하여 리승만역도에게 지체없이 경찰병력을 총동원하여 시위진압에 나서라는 살인명령을 내렸으며 《계엄사령부》를 조직하고 중무장한 남조선군병력과 땅크,장갑차들까지 서울시내에 투입시켜 대살륙전에 내몰았다.
격노한 청년학생들은 쓰러진 학우의 피로 물든 옷자락을 기폭처럼 날리며 결사항전의 기세를 올렸으며 각계각층이 참가한 봉기대렬은 삽시에 100여만으로 늘어났다.
봉기자들은 《자유당본부》와 《반공회관》을 불태워버리고 《미경제협조처》,《중앙청》,《국회의사당》등을 점거한데 이어 《경무대》로 육박하여 매국역적 리승만의 숨통을 조이였다.
미제는 더는 쓸모없게 된 리승만으로 하여금 4월 26일 《하야성명》을 발표하고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남조선잡지 《월간조선》 1983.6)
마침내 리승만독재정치는 종말을 고하고야 말았다.
사태가 이렇게 번져지자 미제는 식민지통치를 수습하기 위한 모략극으로 허정《과도정부》에 이어 장면《내각》을 련이어 조작하고 이른바 《자유》와 《민주주의》를 고창해나서게 하였다.
그러나 각성된 남조선인민대중은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 바로 미국에 있으며 조국통일만이 살길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투쟁의 예봉을 미국에 돌리기 시작하였다.
《양키는 물러가라!》, 《통일만이 살길이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밑에 남조선인민들은 예속정권을 타도하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에 힘있게 일떠섰다.(남조선 《세계통신》 1961.4.26)
극도의 불안을 느낀 미제는 남조선인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4.19의 넋을 짓밟고 오래동안 길들인 깡패들을 내세워 군사파쑈독재의 시작을 알리는 《5.16군사정변》을 단행해나섰다.
이에 대해 남조선출판물들은 남조선에서 《군인정치에 의한 교체도 미리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 은밀히 《군사쿠데타》를 준비하여오던 미국이 1961년 5월 16일 당시 륙군참모총장이였던 장도영을 표면에 내세우고 실지로는 제2군 부사령관이였던 박정희에게 방대한 무력을 넘겨주어 하루밤사이에 서울을 점령하고 《군사혁명위원회》의 이름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게 하였다고 《정변》의 진상을 까밝혔다.
상전의 각본에 따라 무력으로 《정권》을 가로챈 군사불한당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한데 이어 악명높은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희세의 악법인 《반공법》을 조작하여 반공을 《제1국시》로 하는 군사파쑈독재《정권》을 연출해냈다.(남조선도서 《지배와 항거》)
이것은 새 정치와 새 제도,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투쟁에 대한 악랄한 도전이였다.
《군사정변》조작으로 온 남조선을 또다시 《공기없는 천지》, 《즙이 없는 땅》, 《빛이 없는 세상》으로 만든 미제는 군사파쑈《정권》을 길들여 저들의 전략적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광분하였다.
급기야 군사독재자를 백악관에 불러 《군사정변》의 《성공》을 《축하》하여 제일먼저 축배잔을 찧은것도 미제였으며 《<군사쿠데타>에 대한 지지와 고차원적인 군사,경제적원조를 약속》하면서 극구 비호해나선것도 미제였다.
미국대통령 케네디와 부대통령 죤슨이 《군사쿠데타》에 대해 공식 지지해나선데 이어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밴플리트는 《<군사쿠데타>는 남조선력사상 가장 위대한 사변이였다》고 떠벌였으며 미중앙정보국 장관 알렌 덜레스는 《내가 재임중 미중앙정보국 해외활동에서 가장 성공한것이 남조선에서의 군사쿠데타였다》고 공공연히 뇌까리였다.(남조선도서 《지배와 항거》)
제반 사실은 미제가 남조선에서 《군사정변》을 직접 계획하고 조종한 장본인이라는것을 명백히 확증해주었다.
군사정변의 방법으로 예속정치실현의 직접적하수인,주구들을 기저귀 갈아대듯 하는것은 세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미제가 써오는 상투적인 식민지통치수법이다.
미제는 바로 그 수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4.19의 넋을 짓밟고 남조선사회발전의 암적존재인 군사파쑈《정권》을 조작해냈던것이다.
이것은 그 어떤 식민지통치자나 반동지배층도 혁명적폭력에 의하여 타도되지 않는 한 절대로 인민대중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고 정권을 내놓지 않으며 미제의 지배를 끝장내지 않는 한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발전도 조국의 통일도 이룩할수 없다는 교훈을 남기였다.
미제에 대한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로 리승만반역통치를 뒤집어엎고 반미애국항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어놓은 영웅적인 4.19인민봉기는 오늘 의로운 항쟁 45돐을 맞이하는 남조선인민들을 미군철거와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정의의 투쟁에로 힘있게 부르고있다.
광주인민봉기와 대살륙만행의 진범인
영웅적4월인민봉기가 남긴 력사의 교훈은 드디여 대중적인 광주인민봉기를 불러왔다.
오늘도 항쟁의 도시 광주는 1980년 5월 5,000여명의 희생을 내면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여 결사항전을 벌렸던 피의 그날과 함께 인간백정,미제야수들의 천인공노할 살륙만행의 증견자로 되고있다.
《10.26사태》로 《유신》독재는 종말을 고했으나 미제의 부추김밑에 군사불한당들은 악명높은 《유신》체제를 이어갈 제2의 군사《정권》조작을 위해 《비상계엄령》을 거듭 선포하면서 온 남조선땅을 살벌한 분위기에 몰아넣었다.
근 20년간 《유신》파쑈정치에 시달려온 남조선인민들의 원한과 분노는 극도에 달하였으며 드디여 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광주무장봉기의 첫 홰불을 지펴올렸다.
《유신체제를 철페하라!》, 《전두환은 퇴진하라!》는 그들의 격노한 웨침은 광주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심장마다에 투쟁의 불을 달아주었고 이에 30여만의 시민들이 합세하여나섰다.
광주시민들의 영웅적항쟁은 파쑈적인 《유신》체제를 청산하고 자주와 민주, 새 정치, 새 생활을 위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싸운 의로운 반파쑈민주항쟁이였다.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투쟁은 지극히 정당하였으나 군사파쑈집단은 중무장한 《계엄군》을 내몰아 처음부터 대살륙전으로 대답해나섰다.
항쟁용사들은 《싸우는것만이 민주화의 표본이며 무장한 적에게는 무장으로 맞서야만 승리할수 있다》고 하면서 《민주투쟁위원회》와 《시민군》을 조직하고 손에 무장을 잡았으며 폭압자들을 도시에서 몰아내고 광주를 파쑈가 없는 자유의 도시로 10일간 지탱해내는 승리를 이룩하였다.(남조선도서 《움직이는것은 무엇이든 쏴라》)
봉기가 전민무장항전으로 확대되자 미제는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을 두목으로 하는 군사깡패들을 항쟁자들과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살륙에로 부추겼다.
상전의 살인지령을 받은 전두환은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잔인성은 군대의 첫째가는 기질이다》, 《광주시는 특전대원들의것이다. 녀자도 재산도 무엇이나 골라잡으라》고 악을 쓰며 진압작전에 동원된 《공수특전대원들을 몇끼씩 굶긴 다음 술에 환각제를 타서 먹게 하고 굶주린 이리떼마냥 광기가 극도에 달했을 때 즉시 살륙작전》에로 내몰았다.(남조선도서 《지배와 항거》)
광주시민들은 환각제에 취한 《공수특전대》가 휘두르는 대검에 찔리우고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졌으며 길가던 소년도 70나이의 로인도 만삭이 된 임신부도 녀학생들도 살륙의 대상으로 되여 총탄과 화염방사기앞에서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남조선도서 《살인마 전두환의 광주학살의 현장》)
세계전쟁사에는 비인간적살륙만행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지만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시기에 환각제를 먹은 군인들이 한피줄을 나눈 자기 동족을 땅크로 깔아죽이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내동댕이치고 순결한 처녀들의 젖가슴을 도려내여 죽인 그런 례는 없었다.
권력유지에 방해가 된다면 그가 설혹 자기 부모형제일지라도 서슴없이 죽이는 야만들,인간백정들만이 감행할수 있는 도살만행에 의하여 광주시에서는 단 며칠동안에 무려 5,000여명이 학살되고 1만 4,000여명이 부상당하였으며 광주는 《피의 목욕탕》, 《망령만이 배회하는 죽음의 도시》, 《시체의 퇴적장》으로 화하였다.
이 엄혹한 참상을 취재한 미국의 《평화부대》 성원 스티분쓰 한쟈는 이것은 정말 《나치스의 잔학행위》를 뛰여넘는다고 규탄하였으며 세계 각 국의 TV방송원들은 광주사태를 보도하기에 앞서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TV앞에 마주앉지 말라》는 예고까지 내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계를 경악시킨 광주인민대학살만행을 직접 지휘하고 조종한 진범인은 다름아닌 미제였다.
《백악관은 긴급수습대책 살인지령문을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 윅캄에게 직접 통고》하면서 봉기진압작전을 《현지에서 조종지휘할데 대한 임무》를 하달하였으며 이에 따라 윅캄은 7만여명의 방대한 무력과 장갑차,중포,미싸일,군용직승기와 심지어 항공모함전단까지 광주의 평화적주민들을 살륙하는데 투입하도록 명령하였다.(일본에서 발행되는 잡지 《통일평론》 1981.9)
이에 대해 남조선의 《서울신문》과 《제1라지오》는 미국이 남조선신군부세력에게 《련합군의 지휘하에 있는 군병력을 사용하도록 허용하였다》고 폭로하였으며 미국신문 《져널 오브 코미스》는 《광주대학살작전과 군의 투입을 지지》한다는 미국의 《공식립장》이 군사깡패들에게 전달되였다고 까밝혔다.
미제는 살륙방법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기질을 보여주었다.
윅캄은 의로운 항쟁자들을 《버릇없는 망나니》,《폭도》로, 지어 《들쥐》라고 모독하였으며 미국대통령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브레진스키는 항쟁을 《무쇠주먹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폭언하면서 《초전박살》,《젊은이 싹쓸이작전》의 살인수법들도 불사하라고 명령하였다.(남조선도서 《지배와 항거》)
전두환자신도 1980년 5월 30일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대사는 광주에서의 잔학행위를 남조선사회의 안정화를 위하여 필요》한것이라고 하면서 군부세력을 《고무》하였다고 미국의 배후조종과 개입관계에 대하여 토설하였다.(일본에서 발행되는 잡지 《통일평론》 1981.9)
그러나 미제는 광주대학살의 진범인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렬한 술수를 꾸며대였다.
남조선주재 미국대사 릴리는 《동아일보》와의 회견에서 미군이 광주탄압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광주에 있던 부대가 《미군작전권아래에 있은것도 아니였다》고 떠벌였으며 미국대사관 정치담당참사관 던롭은 1985년 미국《문화원》을 점거한 학생들과의 면담에서 《광주사태 당시 군병력지휘자는 남조선측이였으므로 미국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줴쳤다.
이런 뻔뻔스러운 자들이기에 지난해 9월 남조선주재 미국 대사 크리스토퍼 힐은 5.18《국립묘지》에 나타나 광주봉기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연극까지 놀았다.
수천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자가 자기가 죽인 희생자들의 령혼을 《위로》하는 교활한 행위야말로 미제야수들만이 할수 있는 정치만화이다.
나무는 베여넘겨도 뿌리는 남는 법이다.
광주인민봉기는 비록 지배자,압제자들에 의하여 진압당하였으나 100여년전의 빠리콤뮨과 더불어 동방인민들의 투쟁사에서 처음으로 시민전체가 총쥔 병사가 되여 싸운 가장 크고 격렬한 항쟁이였으며 남조선인민들의 불굴의 의지를 총대로 힘있게 시위한 영웅적인 반미반독재투쟁이였다.
오늘까지도 남조선출판물들은 《5.18은 죽은 력사가 아니며 광주민중항쟁은 80년대 아시아민주주의혁명의 정신적진원지》, 《자주,민주, 통일을 향한 새 길을 열어젖힌 계기점》이였다고 평가하고있다.(남조선신문 《한겨레》 2000.5.18, 남조선도서 《움직이는것은 무엇이든 쏴라》)
광주의 5월은 잊혀지거나 사라지지 않았으며 광주항쟁용사들의 영웅적위훈은 오늘도 4.19의 고귀한 정신과 더불어 남조선인민들과 온 겨레의 마음속에 애국의 넋으로 자리잡고있다.
6월인민항쟁과 군사독재정권연장의 막후조종자
1987년에 일어난 6월인민항쟁은 미제의 비호와 교활한 음모에 의해 감행된 《5공》군사파쑈독재의 연장과 《6공》군사독재《정권》의 조작책동을 반대하여 일떠선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인 반미반독재투쟁이였다.
영웅적광주인민봉기이후 남조선인민들은 군정의 종식과 민정수립을 위한 투쟁을 끊임없이 벌렸지만 미제의 비호밑에 《유신》잔당들의 군사파쑈《정권》,《5공》독재가 또다시 군림하였다.
《5공》독재의 자리에 들어앉은 전두환은 자주,민주,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막아나서는 한편 《개헌불가》론을 부르짖으며 집권연장을 위한 계책에 매여달렸다.
인민들은 《유신》독재가 만들어놓은 《대통령간접선거제》를 《직선제》로 바꿀것을 견결히 요구해나섰으며 개헌을 요구하는 그들의 투쟁은 더욱 고조되여 1,000만명개헌서명운동으로 확대되였다.
그러나 전두환일당은 《합의개헌》약속마저 줴던지고 1987년 4월 13일 《특별담화》를 통하여 《임기중 개헌은 불가능》하며 《국론》을 분렬시키는 《개헌론의를 중단》한다는 이른바 《4.13조치》를 공포한데 이어 미제의 각본에 따라 1987년 6월 10일에는 《민정당전당대회》에서 로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지명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이것은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을 《합법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정치폭거였다.
격분한 서울의 25개 대학 1만여명의 학생들은 이날 《군사독재를 타도하라!》, 《독재를 지지하는 미제를 몰아내라!》는 구호를 웨치며 일제히 시위투쟁에 떨쳐나섰다.
청년학생들의 투쟁은 남조선전역으로 급속히 확대되여 각계각층 군중 500여만명이 참가한 대중적인민항쟁으로 번져졌다.
항쟁참가자들은 《4.13조치철회》와 《호헌철페》,《군부독재타도》와 《직선제개헌》,《미제의 간섭반대》,《민족통일》의 구호를 전면에 제기하고 련일 집회와 시위를 벌렸으며 투쟁의 예봉을 미국에 돌려 도처에서 미국대통령 레간의 허수아비와 성조기를 불태워버렸다.
항쟁참가자들은 12만여명에 달하는 시위진압경찰에 맞서 수백동의 통치기관들과 폭압장비들을 파괴소각하고 과감히 싸워 6월 18일에는 서울과 부산 등 중요 도시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남조선땅을 《하나의 큰 전쟁터》로 만들었으며 독재권력의 기반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남조선잡지 《월간조선》 1987.8)
미제는 남조선에서 《이미 뢰관이 타고있는 상태이며 언제 점화될지 모르는 이 폭발은 일대 소요와 류혈사태를 야기시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리익을 추구하는데 필요한 개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공개적인 외교력》발동을 제창해나섰다.
무력과 위협공갈만으로는 사태를 더는 수습할수 없게 되자 미제는 《5공》독재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새로운 군부세력 로태우에게 《민간정치인》의 외피를 씌워 통치하도록 하는것이 항쟁을 무마하기 위한 《최선의 방도》라고 인정하고 그 실현을 위한 정치모략극에 매여달렸다.(일본잡지 《세까이》 1987.6)
미제는 이미 짜놓은 계획에 따라 《5공》독재자에게 레간대통령의 《친서》를 보내여 《압력》도 가하고 《군사쿠데타》설까지 류포시키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태해결에 나서도록 조종하는 한편 국무장관 슐쯔, 국방장관 와인버거 등 음모와 모략의 능수들을 총동원하여 《직선제개헌》과 《사면복권 및 구속자석방》,《언론기본법개정》 등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시국수습방안》을 준비하는데 달라붙었다.(남조선잡지 《주간조선》1987.7.5)
이 《시국수습방안》은 미국회 하원과 상원의 통과를 거쳐 국무성 차관보 시거를 통하여 로태우에게 전달되였으며 로태우는 6월 29일에 그것을 발표하는 연극을 놀게 되였다. (남조선잡지 《말》 1987.8)
이에 대하여 영국 로이터통신과 일본 《산께이신붕》, 미국신문 《워싱톤 포스트》 등 외신들은 《미국은 남조선에서의 식민지적리해관계에 위험이 닥쳐오자 배후에서 음모를 꾸미였다》, 《전두환,로태우의 <시국수습방안>은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무마하려는 워싱톤모략가들의 창안품이다》, 《전면적인 <민주개혁안>은 기만이며 값눅은 선심이다》라고 그 진상을 밝혔다.
6월인민항쟁으로 하여 재집권을 꿈꾸던 《5공》독재는 물러났으나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을 획책하는 미제의 배후조종으로 남조선에는 《민간인》의 탈을 쓴 새로운 《6공》군부독재《정권》이 세워졌다.
이처럼 6월인민항쟁과정은 남조선에서 군부독재《정권》을 조작하여 식민지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모략과 권모술수, 음모와 흉계들을 꾸며온것이 미제라는것을 다시금 폭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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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실은 남조선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악독한 식민지군사통치를 연장해오면서 수백만의 무고한 인민들을 무참히 살륙한 장본인은 미제침략자들이며 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도 지켜낼수 없고 남조선인민들이 언제가도 마음편히 살수 없다는것을 교훈으로 보여주고있다.
남조선인민들이 줄기차게 벌려온 영웅적인 봉기와 항쟁들에서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늘 6.15통일시대에 사는 온 겨레를 미제와의 결사항전에로 힘있게 부르고있다.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정의로운 봉기와 항쟁들에서 발휘한 정신을 이어 반미애국성전의 불길을 더욱 높이 지펴올려야 한다.
공화국북반부의 전체 인민들과 온 겨레는 남조선에서 감행한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다시금 준렬히 단죄규탄하며 남조선인민들의 의로운 투쟁에 뜨거운 동포애적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는 이 기회에 자주와 민족적독립, 평화와 민주주의,인권을 귀중히 여기는 전세계진보적나라 정부들과 인민들이 조국광복 60돐과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 발표 5돐이 되는 올해를 남조선에서 미군강점의 60년을 끝장내는 원년으로,민족자주통일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투쟁에 지지와 성원,련대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주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주체94(2005)년 4월 6일

평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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