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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천도교회부위원장의 글 《1905년 과 2005년》

(평양 5월 28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강철원부위원장은 《1905년 과 2005년》이라는 제목으로 된 글을 발표하였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망국의 《을사5조약》을 강요당한 때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력사에서 나라가 통채로 외세에 먹히우는 굴욕을 당해야 했던 비운의 1905년.
세기의 5년이 다시 돌아온 지금 우리는 행성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승리자의 환희와 격동에 넘쳐 흘러간 1905년을 되돌아보며 100년이 지난 오늘을 생각해본다.
1905년은 어떻게 망국으로 저물었고 2005년은 어떻게 강국으로 솟아 빛나는가를.
그것이 암흑과 광명, 지옥과 천국, 수치와 존엄으로 대조되는 우리 조선의 너무도 판이한 두 모습이다.
선군조선의 국력과 존엄이 하늘에 닿고있는 크나큰 민족적자부심을 이 글에 담아 나는 말하려고 한다.
을사년의 통곡소리
20세기 조선의 력사는 피눈물나는 망국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그 세기의 다섯번째 해가 되는 1905년에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었다.
너무도 믿기 어려운 망국이였고 너무도 가슴터지는 민족의 불행이였다.
반만년의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사는 하루아침에 망국의 력사로 뒤바뀌여야 했다.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를 이으며 슬기와 용맹을 떨쳐온 조선민족이 한순간에 섬나라 오랑캐무리들의 노예가 되였다.
《…아 통분하다. 우리 2천만 국민이 노예로 되여 살아야 하는가 죽어야 하는가. 건국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루밤사이에 멸망하고 만단 말인가. 비통하다. 비통하다. 동포여! 동포여!》망국의 절통함에 가슴을 치며 《이날에 목놓아 우노라》고 《황성신문》에 피눈물로 새긴 장지연의 글이다.
그것은 20세기초 망국조선이 터뜨린 원한의 탄식소리였다.
온 겨레는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삼천리는 눈물의 강산으로 변했다. 학교는 문을 닫고 상인들은 장을 거두었으며 가정들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일본의 노예로는 살지 않겠다고 자결의 길도 택했다.
서방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리론과 량자론을 발견한 1905년을 20세기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기적의 해》로 불렀다. 그러나 지구의 한쪽에서 기적을 떠들 때 다른 한쪽에서는 망국민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그칠줄 몰랐으니 조선의 1905년은 세계에서 가장 비통하고 암울한 해였다.
동서고금에 류례가 없는 망국《조약》의 날조, 그것은 힘 없는 조선민족이 당한 가슴아픈 치욕이고 비극이였다.
일제는 왕궁을 무력으로 겹겹이 포위하고 황제와 리조봉건정부의 대신들을 총칼로 위협하며 망국《조약》을 강박했다. 반대하는 대신들은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고종황제가 《조약》체결을 끝까지 반대하며 《백성들의 의향》을 물어야 한다고 하자 《헌법정치》가 아닌 《군주전제국》에서 《백성의 의향은 기괴천만한 일》이라고 무조건적인 순종만을 강요했다.
그리고 최고주권자인 황제의 비준도 옥새날인도 하지 않은 조약문서를 《조약》이라며 세상에 공포했다.
흘러온 인류력사에는 외래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하고 지배당한 나라와 민족들의 불행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 대다수는 침략자들과 맞서 항전을 벌리다 힘이 모자라 패한 경우들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자기 나라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침략자들과 싸움 한번 못해보고 앉은 자리에서 나라를 빼앗겼다. 외세가 침략군을 끌고와 나라를 내놓으라고 강박할 때 전쟁은 고사하고 왕궁 하나도 지켜내지 못하였다.
망국은 누구도 원치 않았으나 그것은 국력이 약한 조선민족의 슬픈 운명이였다.
일본은 《명치유신》후 조선강점과 지배를 위해 무력증강에 열을 올렸다.《함선건조10개년계획》이라는것을 세우고 1896년부터 막대한 자금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청일전쟁에서 받아낸 배상금을 포함하여 17억¥을 군사비로 들이밀었다. 당시 일본경관이 한달에 받는 평균임금이 5¥이였다고 하니 그것이 얼마나 막대한 돈인가를 짐작할수 있다.
그리하여 일본은 1905년에 이르러 6천t급이상의 최신군함만도 12척에 현대적무장을 갖춘 20만명의 륙군상비무력을 가지게 되였다. 이 방대한 무력을 배경으로 일본은 리조정부에 망국《조약》을 강요하려고 로일전쟁에 투입했던 저들의 기본병력을 서울에 끌어들였다. 당시 서울에는 일본군의 보병 3만명, 기병 800명, 포병 5천명이 투입되였다.
이에 비해 조선군대의 병력수는 서울에 2개 련대 5천명과 지방에 8개 대대 약 2천명을 합쳐 7천명정도에 불과했다. 이것은 한개 사단의 병력에도 미치지 못하는것이였다. 이렇게 적은 군대마저 제대로 된 군사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군대의 무장장비도 한심하기 이를데 없었다.
당시 조선군대의 기본무장장비는 창과 활,화승대였다. 1882년부터 리조봉건정부는 다른 나라들에서 얼마간의 소총과 탄약 등을 구입해왔으나 청일전쟁때 일본군에게 대부분 빼앗기고 그나마 남아있던 무기와 탄약도 모두 일본군의 관리하에 있어서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만명 대 7천명.
대포 대 화승총.
이것이 1905년 당시 일본과 조선의 군력실태였다. 이런 군력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켜낼수 있었겠는가.
고대로마의 어느 한 력사가는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준비되여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력사가 인류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리조봉건정부는 너무나 안이하고 무맥했다. 중세기의 문화에 큰 자욱을 남긴 세종은 우리 나라를 《군사의 나라》라고 하면서 자신이 직접 활을 메고 말을 타며 활쏘기를 하였다 한다. 하지만 그후 리조통치배들은 사대주의에 물젖어 《4서 3경》,《4서 5경》을 숭상하는 유교성리학을 내리먹이여 사회적으로 《문존무비》의 기풍을 만연시켰다. 15세기 후반기 이후로는 나라에서 상무기풍이 사라져가게 되였다.
그러다 당한것이 임진년의 참혹한 전란이였다. 하지만 여기서도 교훈을 찾지 못하고 리조의 집권층은 사대와 음풍영월,권력다툼으로만 세월을 보냈다. 날로 쇠퇴해가는 군력을 추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쇄국으로 보존하려 했다.결국 함포를 끌고 온 침략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면 안되였고 나중에는 두고두고 지울수 없는 을사년의 치욕까지 당해야 했다.
망국은 이처럼 우연도 뜻밖의 재난도 아니였다. 조선을 일본의 《보호》하에 둔다는 《을사5조약》이 날조된 1905년 11월 17일은 부패무능한 봉건집권층에 의해 수백년간 썩을대로 썩고 기울어질대로 기울어진 나라가 일본의 침략의 중압에 눌리워 끝내 통채로 무너져내린 시각이였다.
조선의 하늘에 망국의 비운이 짙게 드리웠을 때 이 비참한 《약소국》을 도와나선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을사5조약》이 공포된후 조선황실은 그것이 강제로 날조된 가짜 조약이라는것을 세상에 알리려고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였으나 힘 없는 조선민족의 목소리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을사5조약》의 날조로부터 시작하여 《한일합병조약》이 강요되기까지 영국은 《일본이 조선에서 그 세력을 증가하는데 대해 하등 반대할 리유가 없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에서의 행정이 매우 선의에 차있고 조선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애쓰고있는 흔적이 력력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20세기초 조선의 비참한 운명은 세상에 믿을것은 자신의 힘밖에 없으며 그 힘이 약할 때 차례지는것은 필연코 망국이고 망국노의 운명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1913년 8월 29일 서울 룡산에 있던 조선강점 일본군사령부 련병장에서는 《공개비행대회행사》라는것이 벌어졌다고 한다. 바로 이날은 3년전 침략자들이 조선을 일본에 합병한다는 《조약》을 공포한 날이였다. 그 치욕의 날에 조선사람들의 머리우로는 일본인이 탄 비행기가 처음으로 하늘을 날았다. 그것은 일본의 강한 군력을 알고 일본의 지배에 순종하라는 침략자들의 말없는 위협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회고록에서 《망국은 순간이고 복국은 천년》이라고 쓰신것처럼 잃기는 쉬워도 찾기는 힘든것이 나라이다. 그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까지에는 무려 40여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이 기나긴 나날 우리 민족은 자기 말과 글,성은 물론 정든 고향산천의 이름마저 왜놈에게 빼앗겨야 했다. 나라가 없으니 우리 천도교인들의 운명 또한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수많은 천도교인들이 박해와 탄압을 당하고 철창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참으로 망국으로 초래된 40여년의 식민지통치는 겨레에게 나라 잃은 백성의 신세는 상가집개만도 못하다는것을 뼈저리게 깨우쳐준 암흑의 40여년, 피눈물의 40여년이였다. 그 나날 우리 겨레가 백년숙적 일제로부터 당한 천만가지의 모욕과 박해, 불행과 재난은 세기가 바뀐 오늘도 지울수 없는 멍으로 남아있다.
을유년의 만세소리
지금도 귀 기울이면 《시일야방성대곡》의 처절한 소리가 들려오는듯싶은 이 땅에서 《을사5조약》날조 100년이 되는 올해(을유년)에 세계를 놀래우는 어떤 사변이 일어났는가.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더욱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것이다.…》
전파를 타고온 행성에 울려퍼진 선군조선의 뢰성 같은 핵무기보유선언.
온 나라가 크나큰 격동과 환희에 잠기였다.만나는 사람들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잠을 안자도 힘이 난다고 심장의 격정을 토로했다.
얼마나 당당한 조선민족의 웨침인가. 얼마나 강해진 내 조국의 오늘인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가 1905년에는 망국《조약》을 강요당했지만 100년이 지난 2005년에는 세계 최강국의 존엄과 위력을 떨치고있는데 대하여 응당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정말 온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는 말씀이다.
어제날의 망국조선이 핵무기보유국으로.
어제날의 노예의 후손들이 최강의 민족으로.
참으로 이것은 조국과 민족의 지위와 운명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변이며 질적변화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사에서 자주권을 당당하게 행사한 국가들은 례외없이 군력이 강하였다. 그러던 우리 나라가 힘이 점점 약해져 리조말기에는 이 땅이외세의 리권쟁탈을 위한 각축전장으로 화하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대국들 싸움에 찢기는것은 조선이였다. 조선반도와 그 주변지역을 무대로 19세기말에는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20세기 초에는 로일전쟁이 벌어졌다. 나중에는 삼천리가 왜놈의 발굽밑에 짓밟히게 되였다.
8.15광복을 맞으면서는 외세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나고 조국의 절반땅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되여 60년간이나 민족적불행과 고통을 당하고있다.
우리 민족의 곡절많은 력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자주는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며 나라를 지키고 자주적으로 살아나가자면 군력이 강해야 한다는것이다.
우리 민족의 힘은 오늘 선군시대에 와서 최대로 강해졌다.
나는 우리 조국의 이 놀라운 현실을 보면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얼마나 력사에 길이 빛날 크나큰 업적을 쌓으시였는가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느끼게 된다.
행성에 떨치는 조선의 무적필승의 힘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선군사상을 계승발전시켜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정치의 빛나는 결실이다.
인류사에는 군사를 중시한 정치가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군대의 지위를 오늘의 선군시대처럼 최고의 높이에 올려세우고 군사를 단순히 군력강화만이 아니라 그것을 기본으로 하나의 독창적인 정치방식을 펼쳐가는 위인은 일찌기 력사에 없었다.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는 우리 민족 반만년력사의 교훈에 기초하여 그리고 힘이 없으면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여야 하는 오늘의 엄혹한 세계정치정세를 반영한 가장 정당하고 가장 위력한 애국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를 오래전부터 이 땅에 찬란히 펼쳐오시였다.특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조국이 가장 엄혹한 시련과 난국에 처하였던 지난 세기 90년대에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드시고 조국과 겨레를 위해 쉬임없는 선군령도의 길을 걸으시였다.
사실 그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장군님께서 어찌하여 나라가 그처럼 어려운 때 인민경제부문이 아니라 군사부문에 더 힘을 돌리시며 군대를 끊임없이 시찰하시는지 다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있다. 그 길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얼마나 위대한 길이였는가를 가슴 절절히 느끼고있다.
사탕알은 없어도 살수 있지만 총알이 없으면 사회주의를 지켜낼수 없고 살아갈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사탕알보다 총알이 더 귀중하다.
바로 이런 신념과 의지를 지니신 장군님이시기에 총대강화의 길, 조국수호의 길을 끝없이 걸으시였다.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 가리라는 신념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부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찬눈비를 맞으시고 험한 령을 넘으시며 찾아가신 대덕산,오성산,지혜산,351고지,1211고지를 비롯한 조국의 무수한 고지들과 섬초소들.
초소의 병사들을 찾아가신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애국의 숭고한 자각을 새겨주시고 백두산총대의 넋이 어린 자동보총도 기념으로 주시였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위협에 놀라고 감언리설에 속아 스스로 무장장비들을 버릴 때 누가 뭐라고 하든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계속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시며 나라의 국방공업을 백배로 다져주신 장군님이시다.
1905년 일제에게 망국을 강요당할 때 우리 나라는 소총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당시 나라의 공업동력이 겨우 227필의 말의 힘과 비교되는 227마력정도였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1903년에 총기제조소를 설치할 계획이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착수도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만 먹으면 그 무엇이든 다 만들어내는 강위력한 국방공업을 가지고있다. 우리 조국을 건드리는 그 어떤 침략자도 일격에 타승할수 있는 미싸일과 핵무기도 척척 만들어내고있다.
령도자가 위대하니 모든것이 강해졌다. 우리 군대는 사상정신적으로 보나 무장장비로 보나 세계제일의 강군이고 인민도 령도자의 사상과 의지로 굳게 뭉친 천하제일의 강한 인민이며 나라도 핵무기와 미싸일로 장비된 난공불락의 요새다.
민족사에 이처럼 군대와 인민,나라가 최대로 강해진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우리 조국의 빛나는 오늘은 장군님 펼쳐가시는 위대한 선군정치의 승리이다. 그이께서 찬바람과 눈비를 다 맞으시며 선군령도의 수천만리길을 헤쳐오신 애국헌신의 고귀한 결실이다.
그 크나큰 은덕에 이제는 이 땅에서 을사년의 치욕과 망국의 력사가 다시는 되풀이될수 없게 되였다.
지금 세상사람들은 이라크는 힘이 없어 짓밟혔지만 조선은 강력한 억제력이 있어 미국도 어쩌지 못한다고 말하고있다.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가져다준 조국의 강한 군력이 없었다면 이 땅에는 또다시 《시일야방성대곡》이 터져오르고 우리 겨레는 이미 백번도 더 전쟁의 참혹한 재난을 면치 못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미국에 있는 재미동포전국련합회의 홈페지에는 《이남국민이 입고있는 선군정치의 덕》이라는 제목으로 한 재미교포가 쓴 글이 실린바 있다. 그는 글에서 지난 10년간 조선반도에서 부쉬의 《악의 축》발언과 《핵선제공격전략》, 《다국적해상봉쇄협정》추진, 미일군사동맹강화, 정치외교적고립책동 등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수차례나 조성되였지만 그때마다 북의 강력한 군사력에 의해 전쟁위험이 사라지고 평화가 보장되군 하였다고 하면서 《조선반도에서 핵무기가 동원된 현대전쟁이 일어날 경우 남조선이 입을 총 손실액은 무려 21조 204억 4천여만US$에 달할것이다. 결국 이북의 선군정치로 전쟁이 억지되고 평화가 보장되기때문에 이남국민은 수십조US$의 덕을 보고있다》고 썼다. 천백번 지당한 주장이다.
지난 3월 중국 심양에 갔을 때 만났던 남조선의 한 종교단체관계자도 《북의 핵은 민족의 핵》이라며 민족의 힘을 최대로 키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공적을 칭송하며 뜨거운 감사의 정을 표시하였다.
어찌 이들만의 심정이라고 하겠는가.선군의 덕을 누구나 입고있는 우리 민족 모두의 심정이라 해야 할것이다.
선군이 없으면 조국도 없고 조선민족도 없다.
한세기전 렬강들의 먹이감이 되여 도마우에서 란도질당하고 대국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조선이 오늘은 할 말을 다하며 존엄높은 나라로 세상에 위력을 떨치고있다.
100년전에 바다를 건너와 우리 나라 왕궁에 대포를 겨누었던 일본도 우리 공화국을 넘보지 못하고 수만개의 핵무기를 가지고있는 미국도 우리 공화국을 건드리지 못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는 이 땅에 6.15통일시대를 펼쳐놓았다. 선군정치로 다져진 조국의 강력한 군력은 미국의 간섭과 방해책동을 짓부시고 민족의 단합과 자주통일을 담보하는 강력한 힘이다.
우리 가문은 3대에 걸쳐 천도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19세기 말 이 땅의 동덕들은 《척양척왜》,《보국안민》의 기치를 들고 갑오농민전쟁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창과 화승대밖에 쥔것이 없는 농민군은 대포와 기관총을 휘두르는 일본군에 의해 생죽음을 당해야 했다. 일본군과의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공주의 우금치계곡은 말그대로 농민군의 시체로 가득차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 신식무기에 밀려 바다로 쫓기는 농민군을 일본군은 전함을 동원하고 광양만에 륙전대를 들이밀어 닥치는대로 죽였으니 그 참상을 어찌 글로 다 적을수 있겠는가.
천도교가 내세운 《보국안민》,《공제창생》의 리념도 현실로 꽃피워주어 나라를 지켜주고 우리 민족을 행성의 으뜸가는 민족으로 내세워주신 위인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참으로 김정일장군님은 렬강들에게 수모당하고 짓밟혀야 했던 우리 조선을 세계적인 핵강국으로 빛내주시고 겨레의 가슴에 맺힌 100년 한을 풀어주신 민족의 위대한 은인이시다.
※ ※
민족도 그 민족이고 땅도 그 땅인데 힘이 없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우리 조선이 어떻게 되여 100년이 지난 오늘 온 세상이 경탄하는 핵강국으로 되였는가.
망국에서 강국으로.
화승대에서 핵무기로.
겨레의 운명, 나라의 군력은 위대한 령도자를 모실 때 비로소 지켜지고 강해진다는것이 민족 100년사의 교훈이고 새겨야 할 진리이다.
100년전 장지연은 약소국의 설음을 처절한 《시일야방성대곡》으로 터쳐 겨레를 울렸다.
그러나 오늘 우리 겨레는 핵강국의 존엄을 떨쳐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여 위인칭송의 찬가를 부르고있다.
100년전에 나라를 빼앗기고 《아,통분하다》고 절규하던 우리 겨레가 오늘은 《세계여 조선을 보라!조선은 화승총 대신 핵무기를 가졌다》고 웨치고있다.
100년전에 망국에 처하여 《비통하다. 비통하다. 동포여! 동포여!》하며 울부짖던 우리 민족이 오늘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여 존엄에 살고 긍지에 살며 승리에 산다》고 환성을 올리고있다.
2005년과 더불어 우리 민족은 무궁번영할것이다.
겨레여, 1905년에서 2005년까지 100년을 잊지 말자.
21세기 새 100년을 김정일세기로 빛내이자!(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htsh_kkch/127017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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