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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조선의 왕릉과 고분에 대한 날강도적인 도굴,파괴범죄》

(평양 6월 12일발 조선중앙통신)12일부 《로동신문》은 《일본의 100년죄악을 총결산할것이다》라는 표제아래 《조선의 왕릉과 고분에 대한 날강도적인 도굴,파괴범죄》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개인필명의 글을 실었다.

예로부터 선조의 무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조상전래의 도덕적관습으로,고상한 미풍량속으로 간주되여왔다.
그러나 초보적인 륜리도덕도 모르는 파렴치하고 잔악무도한 일제강도들은 지난 세기 전반기에 우리 인민이 민족의 자랑으로 대대손손 소중히 보존하여오던 왕릉을 비롯한 고분들을 무참히 파괴하고 귀중한 문화유물들을 닥치는대로 략탈해가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감행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제침략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민족문화말살정책을 실시하면서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략탈하여갔습니다.》
단군릉에 대한 일제의 야만적인 도굴,파괴행위는 오늘도 우리 인민의 분노를 자아내고있다. 놈들은 릉의 봉분을 파헤치고 무덤칸천정돌을 제낀 다음 유물을 략탈하기 위하여 관을 마스고 지어 유골까지 마구 헤쳐버렸다.
일제는 왕릉도굴사건이 드러나는 경우에 일어날 조선사람들의 반항이 두려워 도굴때마다 늘 그 주변에 2중,3중의 삼엄한 경계망을 쳐놓군 하였다.
일제의 대대적인 왕릉도굴만행으로 인하여 고려의 력대 왕과 왕족의 릉들이 무참히 파괴되였다. 고려 24대왕 원종의 소릉,그의 비 순경태후의 가릉을 비롯하여 34대로 이어진 고려왕의 분묘들이 1910년대에 이르러 일제에 의하여 단1기도 남지 않고 모조리 도굴당하였다. 《리조실록》과 일제가 발간한 《고적조사보고》에 올라있는것만 보아도 1905년에는 고려 15대왕과 20대왕의 릉이 도굴당하였고 (《고종실록》권46,광무9년 11월 4일조,권45,광무9년 3월 2일조)1906년에는 고려태조릉을 비롯하여 6기의 왕릉이 도굴당하였으며(《고종실록》권47,광무10년 6월 17일조,10월 15일조)1907년에는 2기의 왕릉이 (《고종실록》권48,광무11년 4월 17일조),1910년과 1911∼1912년에는 각각 1기씩의 왕릉이(《대정5년도 고적조사보고》 1918년판 363,388페지) 도굴당하였다.
일제악한들은 전대미문의 강도적인 방법으로 공민왕릉도 파괴,도굴하였다. 일제는 헌병,경찰 등 수십명으로 구성된 도굴단을 조작하고 폭약까지 리용하여 왕릉을 무참히 파괴하였다. 그리고는 그안에 들어가 수많은 유물들을 략탈하여 10여대의 달구지로 실어갔다.
일제는 왕릉뿐아니라 각이한 시대의 각종 고분들도 모조리 파헤치고 수많은 유물들을 략탈하여갔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는 1921년 12월에 경상남도 량산의 신라시기 부부무덤을 파헤치고 금동제관,목걸이,귀걸이 등 세계적인 우수한 문화재 100여점을 략탈해갔다. 그리고 1924년 10월에는 경찰들까지 동원하여 평양부근의 옛 무덤들을 파헤치고 우리 인민의 발전된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들을 모조리 략탈해갔다.
《대정6년도 고적조사보고》(일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군집하고있는 고분이 도굴에 걸려 파괴되고 황페화된 참상은 보기 딱할 정도이고 실로 잔인하고 혹독함이 극치에 이르러 정치적으로나 종교상으로 보아도 심히 몸서리칠 일이다.》
락랑고분에 대한 일제의 도굴만행도 참혹하였다. 1920년대에 일제의 도굴만행으로 파괴된 락랑고분은 일본어용학자들이 실토한것만 해도 약 1,000기에 달한다.
《당시 평양에 살던 일본인치고 락랑고분에서 나온 옛 거울이나 질그릇과 같은것을 가지고있지 않으면 머저리취급을 당하였다.》
이것은 평양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한 일본인이 1934년에 발표한 글에 기록되여있는 력사자료의 한토막이다.
이 하나의 사실자료만으로도 당시 일제의 고분도굴만행이 어느 정도로 로골화되고있었는가를 잘 알수 있다.
한 민족의 존엄과 전통,인륜도덕마저 깡그리 짓밟으며 왕릉을 비롯한 고분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파괴,도굴한 야만적인 범죄는 극도의 파렴치성과 강도적본성을 타고난 일제만이 저지를수 있는 죄악중의 죄악이였다.
《조선총독부》학무국 고적조사과 주임을 지낸 후지다 료사꾸는 《고분을 파괴하고 그 유물을 백주에 점방에서 파는것과 같은 현상은 세계가 넓다 하더라도 조선이 유일한 례에 속한다》고 실토하였다.
일제의 왕릉,고분도굴범죄의 엄중성은 그것이 단순히 물질적재부에 대한 강탈이 아니라 조선의 력사와 문화전통을 송두리채 없애버리기 위한 악랄한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감행된 범죄라는데 있다.
일제는 왕릉을 비롯한 고분들에 대한 도굴을 통하여 우리 나라의 풍부한 물질문화적재부를 략탈하는 동시에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조선민족의 혈통과 명맥을 끊어버리려고 획책하였다.
일제가 단군릉도굴시에 무덤안을 파괴하고 란잡하게 만들어놓은것은 우리 나라 력사의 첫머리를 없애버림으로써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문명국들중의 하나인 우리 나라의 력사를 인류사에서 지워버리려는 음흉한 속심으로부터 출발한 고의적인 책동이였다.
교활한 일제는 우리 나라의 고적 및 유물의 《보존규칙》,《보존령》,《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등의 허울좋은 악법들을 조작하여 강도배들이 문화유물이 많이 들어있는 왕릉을 비롯한 고분들에 대한 대대적인 도굴범죄를 뻐젓이 감행하도록 적극 부추겼다.
1909년 도꾜에서는 고려자기대전람회가 열리였다. 그 이듬해에 간행된 전람회사진집에는 다음과 같은 해설글이 씌여있었다.
《…지금 우리 일본인들이 (조선의) 어디라도 들어가있으니 만일 (고분에) 있는 물건이라면 반드시 출토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제반 사실은 우리 나라의 왕릉,고분에 대한 일제의 야만적인 파괴,도굴만행이 재물에 환장이 된 일부 모리간상배들에 의한 자연발생적이며 부분적인 범죄행위가 아니라 정부의 배후조종과 적극적인 부추김밑에 감행된 국가적인 범죄행위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준다.
일본은 지난 세기 전반기 일제가 우리 나라에서 감행한 전대미문의 반력사적,반문화적범죄에 대하여 성근하게 사죄하고 철저히 보상하여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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