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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한 전범죄》

(평양 6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26일부 《로동신문》은 《조선전쟁에 적극 가담한 전범죄》라는 제목으로 된 개인필명의 다음과 같은 론설을 실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선전쟁시기에 일본은 우리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미제의 군사병참기지로 복무하였습니다. 우리 나라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한 수많은 미군비행기들과 함대들이 일본에 기지를 두고 출동하였으며 조선전쟁에 투입된 미제의 주요작전물자들과 전투기술기재들도 다 일본병참고에서 나왔습니다. 일본군대와 함선들이 직접 조선전쟁에 참가하였다는것도 비밀이 아닙니다.》
침략과 전쟁의 원흉인 미제가 청소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자마자 일본군국주의의 우두머리 요시다 시게루는 미제침략군을 도와 조선전쟁에 뛰여들 흉계를 드러내놓았다. 이른바 《내각회의》를 벌려놓고 조선에서의 미군의 군사행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할것을 정부의 방침으로 결정한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직접 일본무력을 은페된 방법으로 조선전선에 파견하였다.
일본은 상전의 명령에 따라 비밀리에 《지원병》이라는 미명하에 《황군》출신 군인들을 조선전선에 투입하였다. 1950년 7월 5일 오산계선에서 미제24보병사단의 선견대가 녹아났을 때 그속에서 30여명에 달하는 일본장교들의 시체가 나진데 이어 그후 대전과 대구일대의 전투에서도 일본군인들의 시체가 발견된 사실들이 그것을 립증해준다.
1950년 7월 27일 영국의 로이터통신은 2만 5,000명의 일본군대가 조선전선에서 미제침략군과 같이 군사작전을 벌리고있다고 보도하였다.
1950년 8월 10일 《경찰예비대령》을 발포하여 《경찰예비대》를 짧은 기간에 신속히 조직한 요시다반동정부는 여기에 《황군》출신 군인들을 끌어들여 훈련시킨 다음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에 내모는 한편 《의용군》,《지원대》,《반공십자군》 등 여러가지 명목으로 수많은 침략무력을 편성하여 련이어 조선전선에 들이밀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전선에 투입되는 일본군대의 정체를 숨겨보려고 훈련소들에서 조선말을 배워주고 미군복장이나 남조선군복장을 착용하게 하였다. 그리고 인민군대에 포로되는 경우 자살하거나 일본군대라는것을 완강히 부인할것을 강요하였다.
《황군》출신의 장교들은 조선전선에 도착한 즉시로 미제침략군의 군종,병종부대 참모부들에 배치되여 《고문》,《군사전문가》로 활동하였으며 정찰대,수색대,일선공격작전 등에 직접 참가하여 척후병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일본《지원병》모집은 보병뿐아니라 비행사,해병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벌어졌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일제시기 악명높았던 《가미가제특공대》원들을 비롯한 《황군》출신 비행사들을 여러가지 명목으로 모집하여 숨겨두었다가 미제가 조선전쟁을 도발하자마자 조선전선에 내몰아 그들을 전쟁전기간 미제의 공수작전에 복무시켰다.
미제침략자들은 일본소해대가 지난 태평양전쟁행정에서와 소해작업행정에서 일정한 경험을 쌓았으며 특히는 조선의 해역과 항만,해류와 수심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잘 알고 신속히 기동할수 있는 력량이라는것을 고려하여 그를 조선전쟁에 끌어들이였다. 미제상전의 요구에 따라 일본총리 요시다는 극비밀리에 일본군대의 모든 소해정의 출동을 명령하였으며 소해정과 소해병력의 100%를 조선전선에 파견하였다. 일본소해부대는 미제침략군이 해상작전을 감행한 인천과 원산을 비롯하여 군산과 해주,남포,흥남,리원,단천일대의 조선해역에서 미제침략군의 위험한 소해작업의 돌격대노릇을 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의 인천상륙작전에 적극 가담하였다. 그들은 인천상륙작전계획작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미제침략군 상륙무력과 군수물자의 수송,상륙지점들에 대한 정찰,수로안내와 소해작업에 이르기까지 미제의 인천상륙작전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일들을 맡아수행하였다.
일본은 미제침략군에 《의료대》도 제공하였다. 1950년 9월부터 미제침략군 부상병들에게 피를 바치기 위한 그 무슨 《헌혈운동》이라는 일대 깜빠니야가 일본전국각지에서 벌어졌다. 정부고관들을 비롯한 일본정부의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지어 《천황》의 친척들까지 앞장에 나서서 미제침략군에게 피를 바칠것을 전체 국민들에게 강요하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전쟁전기간 미제침략군에게 뽑아바친 피량은 무려 30만l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은 또한 《구호반》을 조직하여 일본녀성간호원들을 군복차림으로 일본과 남조선에 있는 미군병원들에 제공하고 수많은 의약품과 위생물자들을 대량적으로 생산공급하는 등 미제의 조선침략전쟁수행에 발벗고나섰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의 세균전만행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일제의 악명높은 살인부대인 731부대의 부대장이며 세균전전범자인 이시이 시로일당은 360여만명을 상대로 진행한 8,000여건의 세균,독가스실험자료들과 여러가지 참고자료들,사진자료,환등자료,세균폭탄설계도면, 일본에 있는 세균연구기관들과 중요설비들을 미제에게 넘겨주었다. 이와 함께 731부대는 미제의 세균전계획작성에 참가하였으며 일본의 여러 지역에 있는 미제의 세균무기연구소들과 세균무기생산공장들에 대한 관리를 맡아하였고 세균전에 쓰이는 세균매개체들을 전적으로 담당생산하였다. 그들이 세균탄투하에 참가하는 미군비행사들에게 세균무기와 그 투하에 필요한 강의를 여러차례 해준 사실,세균전결과에 대한 현지조사를 위해 수십차례에 걸쳐 남조선에 기여들어 돌아친 사실 등은 미제의 야만적인 세균전의 충실한 협력자,하수인으로서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추악한 정체를 잘 알수 있게 한다.
그들은 일본의 전 령토를 조선침략전쟁을 위한 미제의 공격기지,보급기지,수리기지로 완전히 내맡겼다. 일본은 혹가이도로부터 규슈에 이르는 일본렬도의 공군기지들과 요꼬스까,사세보,구레,마이즈루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항들은 물론 요꼬하마,고베를 비롯한 여러 무역항구들까지 군용항구로 전변시켜 미제가 조선전쟁에 리용할수 있게 하였다.
일본은 조선전쟁에 요구되는 무기와 전투기술기재,탄약을 비롯한 군수물자의 대부분을 생산하여 미제침략군에 제공하였다. 그들이 전쟁전기간 미제로부터 《특수주문》을 받고 각종 군수물자들을 생산수리공급한 총액수는 25억US$이상에 달하였다. 이에 대해 일제패망후 초대주일미국대사였던 로버트 머피는 《일본인들은 놀랄정도의 빠른 속도로 자기들의 4개 섬을 하나의 거대한 보급고로 전변시켰다.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조선전쟁에서 싸울수 없었을것이다.》라고 실토하였다.
일본은 지난 조선전쟁가담범죄를 절대로 감출수도,정당화할수도 없다. 이것은 우리 인민에 대한 2중의 침략죄악이다.
일본의 침략적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 해외팽창야망에 들뜬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미제의 대조선침략정책에 적극 편승,추종하면서 조선재침의 칼을 날카롭게 벼리고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백년숙적인 일본군국주의세력이 또다시 조선침략의 길에 나선다면 쌓이고쌓인 피값을 총결산할것이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fljckr/260319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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