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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인민의 수령

(평양 7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조선인민이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때로부터 열한번째의 7월이 왔다.

10대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생애의 마지막까지 인민을 위한 성스러운 길에 모든것을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거룩한 모습을 조선인민은 날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사무치게 그리고있다.
김일성주석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날을 하루 앞둔 주체83(1994)년 7월 7일 이른 새벽 주석의 집무실창가에는 밝은 빛이 흐르고있었다.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새벽시간은 닭알노란자위와 같다고 하시며 새벽부터 일을 보시는것을 관습으로 여겨오신 그이께서는 그날 아침도 산책시간을 미루시고 집무를 보시였다.
일군들이 잠시라도 산책을 하실것을 간절히 청을 드릴 때면 빨리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을 완성해야 한다시며 낮에 이어 밤늦게까지 문건을 보시였다.
민족의 혈맥을 이으시려 그처럼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시며 문건을 완성하신 주석께서는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력사적인 문건에 《김일성 1994.7.7.》이라고 쓰시였다. 그러시고는 조국통일은 자신께서 인민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조국통일의 대사변을 맞이할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어나가야 하겠다고 하시며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년로하신 몸이심에도 불구하고 그 전날인 7월 6일에는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에서 나라의 경제건설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생애의 마지막시기 주석께서는 휴식한다는게 뭐 별다른건가,공장이나 농촌을 돌아보는것보다 좋은 휴식이 어디 있겠는가고 하시며 온천군의 농장포전길을 걸으시였다.
한평생 인민을 찾으시고도 모자라신듯 80고령에도 지팽이를 짚고서라도 인민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길을 떠나시였고 인민들 가까이에 가서는 자신께서 지팽이를 짚는것을 보면 인민들이 가슴아파한다고 하시며 그 지팽이마저 승용차에 두고나서신 주석이시였다.
조선인민은 김일성주석의 그 모습을 천년이 가고 만년이 가도 잊을수 없어 마음속에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고 살며 혁명하고있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taver/1531140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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