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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특위 북측본부 조선전쟁시기 미군의 로근리 인민대학살만행 고발

(평양 7월 25일발 조선중앙통신)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 북측본부는 24일 고발장 《희세의 살인마 미제의 죄행을 단죄하여 로근리는 오늘도 분노에 떤다》를 발표하였다.

고발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이 세상에 생겨난 첫날부터 온갖 악행을 다 저질러온 가장 야만적이며 침략적인 나라이다.
세계의 량심은 오늘도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가 감행한 야수적살륙만행을 잊지 않고있으며 그에 대한 저주와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지금으로부터 55년전인 1950년 7월 26일 남조선의 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에서 미제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민간인대학살만행은 양키들이야말로 인간증오사상이 골수에까지 꽉 들어찬 살인악마들이며 우리 민족과 인류의 극악한 원쑤이라는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이다.
미군학살만행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북측본부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이 로근리에서 저지른 반인륜적인 인민대학살만행을 만천하에 발가놓기 위하여 이 고발장을 발표한다.
《귀신도 기가 막혀 통곡할 참극》
《귀신도 기가 막혀 통곡할 참극》,이것은 당시 미제의 로근리학살만행을 단죄하여 남조선출판물에 실린 글의 한 대목이다.
학살진상이 얼마나 몸서리치는것이였으면 귀신에까지 비유하여 개탄하였겠는가.
조선전쟁 발발당시 미국방성에서 《당신을 환영한다》라는 제목아래 《아메리카의 미국병사들은 무자비하고 능숙한 살인자가 되여야 한다.》,《사민도 적군과 같이 대하여야 한다.》,《흰옷을 입은 놈들은 모조리 폭격하여 죽여야 한다.》는 살인교리를 담은 소책자를 조선전쟁에 내몬 미지상군과 공군부대 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조선의 평화적주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살인극을 벌리게 하였다는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군병사들은 곤충을 가지고 장난하는 총각애들처럼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하였다.》,《이것은 그야말로 대학살이였다.》,《제2차세계대전에서 저지른 나치스행위를 릉가하는 야수적인 살인행위였다.》
이것은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로근리주민들과 학살만행자들인 미군병사들,그것을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미국 군법전문가들이 한 말이다.
미제의 로근리 민간인대학살만행은 그들의 증언과 함께 계속 발굴확인되고있는 사실자료들로 하여 더욱 확증되고있다.
1950년 7월 25일 저녁 미제1기갑사단 7련대는 대전으로부터 패주하던 길에 충청북도 영동군 주곡리일대에 이르렀다.
미제침략군은 주변의 마을사람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줄테니 모두 모이라》고 하고는 림계리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이불짐을 이고 진채로 밀려온 피난민들까지 합쳐 강제로 끌고 경부선철길을 따라 다음날 아침 로근리에 도착시켜 대렬을 짧게 압축시킨 다음 몸수색을 하였다.
7월 26일 정오무렵 주민들이 철길우에 집결되였을 때 미군 통신병이 어디론가 무전련락을 한지 얼마후 정찰기 한대가 나타나 그들의 머리우를 몇바퀴 돌고갔다.
그후 곧 미군전투기 2대가 날아와 무작정 주민들의 머리우에 폭탄을 쏟아붓고 기총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철도레루가 엿가락처럼 휘고 사람들과 수레를 끌고가던 소의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하늘로 솟아올랐다. 철길우와 주변에는 순간에 100여명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갈팡질팡 헤덤벼치다가 2개의 기차굴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러자 미제승냥이들은 좋은 먹이감이라도 만난듯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굴속에 대피한 사람들을 향해 앞뒤쪽 야산에서 기관총을 쏘아대다가 그것도 성차지 않아 기차굴 입구에까지 접근하여 미친듯이 사격하였다.
어두운 기차굴안은 영문도 모르고 생죽음을 당하는 수백명의 로인들과 녀자들,아이들의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을 이루었고 굴바닥 배수로는 피도랑을 이루었다.
이렇게 시작된 살륙전은 7월 29일 오전까지 련 4일간이나 계속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부상병을 치료해준다》는 구실로 굴안에 들어와보고는 생존자들을 확인한 다음 또다시 기관총사격을 가하였다.
《어머니가 나를 안쪽으로 앉히고 바로 굴앞에 앉아계셨는데 온몸에 다섯군데나 총상을 입고 돌아가셨다.》,《난 한 미군병사를 보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쳤으나 계속 사격을 가하더군요. 총알 하나가 내 허리를 뚫고 지나가 아이 가슴에 꽂혔어요.》,《…어머니는 하복부와 발목에 파편을 맞아 피투성이고 녀동생은 한쪽눈이 피범벅이 돼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지만 녀동생의 눈알이 빠져 데룽데룽 매달려 있더라구요. 할머니,형님도 거기서 돌아가셨지요.》
살인현장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당시 15살,7살이였던 생존자들의 이 증언은 잔인무도한 미제살인마들에 대한 피타는 절규였다.
결국 미제야수들이 유인하여 끌어간 사람들중 400여명이나 생죽음을 당하고말았다.
로근리는 조선전쟁초기《닥치는대로 죽이라.설사 그대들앞에 나타난것이 어린이나 로인이라고 할지라도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죽이라.그대들은 될수 있는대로 많은 조선사람들을 죽임으로써 미국시민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라.》고 줴친 남조선강점 미8군사령관 워커의 살인명령을 양키병사들이 어떻게 실천에 옮겼는가를 보여주는 증견자로 되였다.
하기에 1951년 5월 조선에서의 미제의 살륙만행을 현지에서 조사한 국제민주녀성련맹조사단의 한 성원은 《히틀러도당이 만든 유럽의 오슈벵찜,마이다네크,마우트하우젠 등은… 사람들을 독가스로 죽이는 유명한 감옥이였다.그러나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하고있는 만행은 히틀러강도배의 그것보다 몇배나 더 참혹한것이였다.》라고 저주하였다.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대살륙전
미제의 로근리대학살만행은 공인된 국제법과 전쟁법규들을 란폭하게 짓밟은 철두철미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반인륜적대범죄이다.
1949년 8월에 채택된 제네바협약 제3조 1항에는 전투행동에 직접적으로 참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 특히 사민들에 대해서는 살인,폭행,학대,고문,인질로서의 억류,불법처형 등의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백히 규제되여있다.
이런 국제법규가 채택된지 1년도 못되여 그것을 란폭하게 위반하면서 미제가 로근리에서 그토록 많은 민간인들을 한꺼번에 학살하였다는것은 결코 그들이 말하는 그 어떤 《우발적사건》이나 《오폭》에 의한것이 아니였다.
근 50년간 흑막속에 묻혀있던 로근리대학살사건이 1999년 9월 29일 미국의 AP통신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지자 미국은 뻔뻔스럽게도 《증거부족》,《불순한 주장》을 운운하면서 어떻게하나 사건의 진상을 음페하고 여론을 무마하며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비렬하게 책동하였다.
미국 백악관대변인은 《우리는 그동안 사건을 충분히 조사했으나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하였는가 하면 미국방성대변인은 《지난 50년 7월에 일어난 사건을 명확히 알수 있는 기록이 없다》고 줴쳤다.
또한 미륙군대변인은 《륙군력사쎈터가 관련서류를 찾아보았으나 로근리량민학살주장을 뒤받침할만한 정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우겨댔으며 미국무성대변인은 《그 보도를 보지 못했으며 처음 듣는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미륙군장관 칼데라는 2000년 12월 15일 《로근리사건을 1년내내 조사한 결과 당시 미군이 민간인들에게 발포한 사실이 없고 상급부대사이에 명령이 있었다는 증거는 더구나 있을수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점차 드러나게 되자 미국은 전쟁중 민간인학살은 《작전수행중 어쩔수없이 일어난 일》이며 학살이 있었다면 그것은 《훈련이 제대로 안된 일부 군인들에 의한 행위》라고 하며 꼬리를 사리려고 하였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수백명을 단 며칠사이에 무참히 학살하고도 그 죄를 덮어버릴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을것이다.
미국은 날조와 거짓선전을 늘어놓았지만 당시 로근리대학살만행에 직접 참가했던 저들의 병졸들까지 나서서 증언하는 통에 더는 어쩔수 없게 되였다.
당시 살인만행에 직접 참가한 미제1기갑사단 7련대 2대대 기관총수였던 노먼 틴클러는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뒤늦게나마 그때 그 일을 증언하려고 나선것은 량심때문이다.》,《언젠가는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는것을 알고있기때문에 털어놓는다.》고 하였으며 다른 한 기관총수였던 유젠 헤쌜맨은 《중화기중대장 맬보른 씨.챈들러대위가 상부와 무전통화후 기차굴 입구쪽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사격명령을 내렸는데 모두 쏴죽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전멸시켰다.》고 실토하였다.
또한 당시 미제1기갑사단출신 병사 6명은 자기들이 로근리에서 민간인들을 사격하였다고 자백하였고 다른 6명도 대학살을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으며 퇴역군인 패터슨은 《이것은 그야말로 대학살이였다.》고 시인하였다.
한 대학생이 굴속에 들어온 미군병사에게 《죽을 땐 죽더라도 한가지만 물어보자. 왜 죄없는 우리를 죽이는지 그 리유나 알고싶다》고 묻자 그 야수는 단마디로 《상부의 명령》이라고 대답하였다.
미국의 AP통신은 미군의 공식문건들과 이전 미군병사들의 증언자료를 통하여 미륙군25사단 사령부가 당시 민간인들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려 평화적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는것을 폭로하였다.
남조선에 조직된 《로근리사건진상조사반》은 사건현장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정밀기술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미국이 1970년대 초에 벌써 지뢰탐지기와 류사한 기술기재들을 동원하여 사건현장을 샅샅이 뒤지면서 탄피와 파편쪼각 등 집단학살의 증거물들을 없애버렸다는 중대한 범죄적사실을 밝혀냈다고 공개하였다.
《로근리사건진상조사반》이 덧붙여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사건현장의 콩크리트구조물에서 아직도 박혀있는 50개의 탄알과 총탄자리 316개를 찾아냈으나 그 주변에 응당 있어야 할 탄피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진상이 공개되면서 미제야수들이 로근리민간인대학살의 범죄를 영원히 흑막속에 묻어두기 위해 이미전부터 계획적으로 짜고들어 증거인멸행위를 해왔다는 내외여론의 규탄과 단죄의 목소리는 더욱 커갔다.
이렇게 되자 최근 남조선당국도 로근리대학살이 처음부터 미국에 의해 감행된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행위였다고 공식인정하는 문서를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모든 사실은 로근리에서 저지른 미제침략군의 대량살륙행위는 사전에 면밀히 준비되여 감행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인범죄로서 그 어떤 기만으로도 가리울수 없으며 미국이 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추악한 《추모탑》 건립놀음
미국의 력사는 한마디로 사기와 협잡,모략으로 일관되여있다.
미국양키들이야말로 남의 나라 땅에서 백주에 살인범죄를 저지르고도 돌아서서는 《추모》요,《참배》요 하는것과 같은 짓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뻐젓이 연출해내는 철면피한들이다.
미국이 로근리에 이른바 《추모탑》이란것을 건립하는 놀음을 벌린것이 그 전형으로 되고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념탑과 추모탑이 있지만 아직 가해자가 피해자를 추모하여 세운 《탑》은 없다.
오직 인디안의 피와 수많은 타민족의 고혈로 살쪄온 미국식인종들만이그렇게 할수 있다.
더우기 《탑》의 《비문》에 사죄한다는 문구는 고사하고 《로근리주민》,《량민학살》이라는 표현조차 없으며 지어 죽인 자와 죽은 사람의 이름도 없이 그저 죽은 사람을 《위로》한다는 어정쩡한 글을 새겨놓았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교활한 살인마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도 로근리의 철다리와 차굴 근처의 콩크리트구조물들에는 미제승냥이들이 쏘아댄 수백개의 총탄구멍이 그대로 생생히 남아있으며 억울하게 숨진 무고한 사람들의 유해가 계속 나오고있다.
미국이 《추모탑》건립과 같은 광대놀음을 벌리는것은 결코 로근리희생자들의 령혼을 위로하자는것이 아니라 저들의 살인마적정체를 가리우고 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은 억울하게 희생된 로근리사람들과 남조선인민들은 물론 우리 겨레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며 인륜도덕에 대한 우롱이다.
지금 격노한 남조선인민들이 《추모탑》건립놀음은 《로근리와 남녘민중에 대한 기만행위》이고 《미국의 책임을 흐려놓기 위한 또 하나의 정치적모략극》이며 《추모탑》은 《위령탑》이 아니라 미제의 《살인기념탑》이라고 항의규탄하고있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것이다.
미제가 남조선에서 벌려놓고있는 기만놀음은 비단 로근리《추모탑》건립뿐이 아니다.
《피의 목욕탕》이라고 불리우며 우리 민족에게 지울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겨놓은 5.18광주인민봉기자들에 대한 대학살은 미국의 직접적인 지휘하에 며칠동안에만도 5,000여명의 무고한 학생,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또 하나의 대살륙전이였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당시 백악관에서는 대통령과 국무,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국정부의 우두머리들이 모여 광주인민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흉악한 살륙작전계획을 작성하였다. 그 지령에 따라 미제살인마들은 《반항자들이 넋을 잃고 주저앉게 하는 묘책은 무자비한 진압》이라고 떠벌이며 살륙전을 적극 부추기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 극악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마땅히 시인하고 사죄할대신 망월동을 찾아 그 무슨 《명복》을 빌고 《참배》하는 광대놀음을 벌려놓으면서 반파쑈민주화와 나라의 통일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5월의 항쟁거리에 떨쳐나섰다가 피흘리며 쓰러진 수많은 광주항쟁투사들과 남조선인민들을 우롱하고있다.
백주에 옷을 벗긴 녀성의 몸에 뼁끼칠을 하여 내쫓고 길가던 녀학생들을 장갑차로 무참히 깔아죽이고 사죄 한마디없이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분향》이니,《위로》니 하는 사기극을 벌려놓은 자들도 바로 미제살인마들이다.
지금도 인천《자유공원》에는 조선침략전쟁의 원흉인 맥아더의 동상이 뻐젓이 서있다.
조선에 대한 침략전쟁계획을 작성하고 그 실현을 위해 미극동군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남조선에 기여든 맥아더는 1950년 《크리스마스》전까지 전조선을 완전히 점령하고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전쟁미치광이였다.
이자는 《조선사람들을 짐승과 같이 생각하라.짐승을 잡듯이 무자비하게 죽여야 한다》고 떠벌이였는가 하면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서울을 탈취하라.거기에는 처녀들과 부녀들도 있다.3일간 이 도시는 너희들의것이 될것이다.너희들은 서울의 처녀들과 부녀들을 차지할것이다》라고 지껄이면서 양키병사들을 살륙만행에로 내몰았다.
이런 살인마의 동상을 인천땅에 세워놓고 그 《치적》을 자랑하고있는 미제야말로 가장 파렴치한 야만들인것이다.
미국이 제아무리 《추모탑》과 《기념비》를 세우고 《분향》하고 《위령제》를 지내며 《참배》한다고 하여 그에 속아넘어갈 우리 민족이 아니며 그런 오그랑수로 100여년동안 쌓이고쌓인 겨레의 반미감정을 가라앉힐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고 가소로운 일은 없을것이다.
피는 피로써 갚아야 한다.
로근리 민간인대학살은 미제침략자들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우리 조국땅 이르는곳마다에서 감행한 살륙만행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전쟁시기 인간증오사상으로 길들여진 미제침략군의 더러운 발길이 닿는 곳마다가 참혹하게 죽은 무고한 우리 인민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사실들이 그것을 웅변으로 확증해주고있다.
미제침략자들은 1950년 7월 로근리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한데 이어 경상남도 창녕군에서만도 100여명을 단꺼번에 무참히 살해하고 남조선의 거창, 의령, 함양, 단양, 문경과 락동강일대에서는 적수공권의 주민들을 끌어내여 집단적으로 학살하였으며 온갖 야수적인 방법으로 곳곳에서 대량살륙만행을 벌렸다.
당시 프랑스의 한 신문은 서울에서 미제살인귀들이 애국자들의 머리가죽을 벗겨 《기념》으로 나누어가지는 소름끼치는 행위를 한데 대해 《20세기의 최대의 만행은 미군이 조선에서 감행하였다.》고 전하였다.
남조선신문 《동아일보》에는 1951년 2월 거창군에서 감행한 미제의 살인만행을 폭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미군은 부락민 600여명을 피난가자고 하면서 박산골짜기에 끌고가 한곳에 세워놓았다.그들은 기관총과 소총 등으로 무려 2시간동안 쏘아댔다.젖먹이어린이들의 울음소리가 멎은 후에야 사격을 중지하고는 시체에 기름을 뿌려 불태워버렸다.어린이들을 죽인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그 시체들을 따로 골라 매장해버렸는데 그후 해골을 골라내여보니 뼈다귀만도 19가마니였다.》
그야말로 짐승도 낯을 붉힐 귀축같은 야만행위였다.
이미 초보적으로 집계되여 공개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조선전쟁시기 미제야수들은 남녘땅에서만도 평화적주민들을 무려 124만여명이나 살륙하였다.
미제야수들의 인간도살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것이였으면 조선전쟁당시 미국신문 《데일리 뉴스》 특파기자였던 케이즈 비치가 《지금은 조선사람으로 태여날 때가 아니다.》라고 썼겠는가.
미제살인마들의 천인공노할 죄행이 오늘도 남조선의 산과 골짜기,갱도와 저수지들에서 계속 드러나 사람들의 경악을 자아내고있다.
지난 6월 26일에는 경상북도 례천군 산성리에서 미제침략군이 1951년 1월 9일에 저지른 살인만행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날 미10군단 사령관의 《초토화작전》명령에 따라 미공군전투기 30여대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폭탄들을 산성리일대에 투하하여 주민 130여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이 당시 미군병사의 증언과 미국의 한 문서보관소의 기밀문서를 통해 그 진상이 밝혀졌다.
미제가 조선전쟁시기 신천을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감행한 살인만행들은 만사람의 치를 떨게 하고있다.
산사람의 사지를 찢고 머리에 못을 박고 톱으로 목을 잘라 죽이는 등 전대미문의 살륙전으로 원한의 땅 신천에서만도 군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380여명의 인민들을 학살한 미제살인귀들의 야수성과 잔인성은 산천초목도 분노에 떨게 하고있다.
신천에서 감행한 미제야수들의 야만성에 대하여 1952년 3월 신천살륙현장을 조사했던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은 《조선에서의 사건은 전쟁이 아니라 범죄였다.》고 규탄하였다.
신천박물관을 참관한 스위스의 한 작가는 신천대학살을 직접 지휘한 미제두목의 죄행을 단죄하여 《 만약 우연히도 지금까지 네가 살아있다면 너는 도대체 잠을 이룰수 있는가.너는 도대체 네 눈으로 짐승의 눈을 들여다볼수 있는가. 짐승의 눈과 살인흡혈귀 네 눈을 무엇으로 분간할수 있단 말인가. 미제에게 멸망을!》이라고 절규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이 조선전쟁에서 학살한 평화적주민들의 수는 초보적으로 집계한데 의하더라도 수백만명을 헤아리며 치떨리는 미군의 살륙만행을 립증하는 유골들이 오늘도 도처에서 계속 발굴되고있어 우리 인민의 가슴마다에 불구대천의 원쑤 미국양키들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천백배로 더해주고있다.
우리 민족은 분렬의 장본인이며 우리 겨레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미제의 죄악을 결산하지 못한채 21세기의 다섯번째 해를 보내고있다.
겨레의 피는 결코 물이 아니다.
로근리와 신천을 비롯한 이 땅에서 미제살인귀들에 의하여 무참히 죽어간 수많은 령혼들이 지금 복수를 부탁하며 온 겨레를 반미항전에로 부르고있다.
존엄과 자주권을 목숨같이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은 또다시 침략의 칼을 벼리며 핵참화로 조선민족을 멸살시키려는 미제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것이며 천추만대를 두고 끝까지 피의 결산을 하고야 말것이다.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는 원한품고 쓰러진 부모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철거시키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위대한 선군으로 존엄높고 6.15공동선언의 기치따라 민족공조로 통일강성대국을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오늘의 조선민족을 미국은 똑바로 보고 분별있게 처신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기회에 정의와 진리,평화와 인권을 귀중히 여기는 세계진보적인민들이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성전과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정당한 투쟁에 대한 련대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주리라는 기대를 표명한다.
주체94(2005)년 7월 24일

평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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