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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야전식으로 수놓아진 선군령장의 헌신의 혁명실록》

(평양 7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26일부 《로동신문》은 《선군정치실록은 주체혁명의 새시대를 펼친 영광스러운 년대기》(3) 라는 고정표제를 달고 마지막부분의 론설 《야전식으로 수놓아진 선군령장의 헌신의 혁명실록》을 실었다.

론설전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실록은 야전식으로 수놓아진 선군령장의 헌신의 혁명실록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나에게는 야전식이 제일입니다. 야전식은 나의 몸에 완전히 배였습니다.》
우리 당의 장구한 선군정치의 력사에는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수령,위대한 령도자의 헌신의 자욱이 빛나게 수놓아져있다. 이것으로 하여 우리 당은 조국수호의 성스러운 력사,조국번영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창조해올수 있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최근 10년간 위대한 령도자가 수놓은 헌신의 력사가 있어 조국번영의 력사가 펼쳐지게 된다는 진리를 더욱더 가슴깊이 새기게 되였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실록은 위대한 선군령장을 모신 군대와 인민은 강성대국건설을 투쟁목표로 하여 신심높이 싸워나가는 존엄높은 군대와 인민으로 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가장 자랑스러운 위인의 헌신의 혁명실록이다.
(1)
령도자의 헌신의 최고표현은 야전식이다. 야전식은 그 불면불휴성,간고성으로 하여 아무 령도자나 다 선택하게 되는것은 아니다. 오직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칠 각오가 되여있는 절세의 애국자,선군령장만이 야전식이라는 험로역경의 길을 선택할수 있다. 야전식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기본활동방식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야전식활동방식은 최근 10년간 당과 군대,국가를 이끄시는 나날에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발현되였다.
야전식으로 일관된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헌신의 대장정이 있어 그 누구도 상상할수 없었던 조미대결전에서의 련전련승이라는 놀라운 기적이 이룩될수 있었다. 인류력사에는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 위인들과 명장들의 헌신에 대한 일화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야전식으로 수놓아진 헌신의 혁명실록을 기록한 위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선군장정의 길을 야전식혁명방식,야전식활동방식으로 헤쳐나가시였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실록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야전식관점에서 모든 정황을 처리하고 사업과 생활을 설계하시고 늘 전선에 계시면서 험로역경을 헤쳐오신 헌신의 위인실록이다.
랭전이 종식된 후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해 제국주의련합세력이 사면팔방에서 피를 물고 악착하게 달려들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온 나라를 익측도 후방도 없는 하나의 전선으로 보시고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을 행복의 요람속에 잠재우시고 학생소년들은 야영소로 떠나보내시면서도 자신께서는 늘 선군행야전차에 오르시여 전선길을 이어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장정에 의해 우리 나라를 최종압살하려던 원쑤들의 책동은 산산이 짓부셔지고 우리의 일심단결은 수령,당,군대,인민의 혼연일체로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서게 되였다. 혁명의 전선사령관이 되시여 모든 중임을 다 맡아안고 해나가시는것,이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야전식사고방식,야전식활동방식의 숭고한 발현인 동시에 당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비상한 애국심,놀라운 열정의 집중적발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선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던 어느날 일군들이 유사시도 아닌 지금 최고사령관은 최고사령부 본부에 계셔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인민들의 신소를 막을수 없다고 말씀드리자 그것을 제지시키시면서 가시철조망을 친 전연지대뿐아니라 그보다 더 험하고 위험한 곳에도 가보아야 한다,나는 인민의 지도자로서,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서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군인들에게 충실할것이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지니신 력사적사명과 책임감,비상한 헌신성과 열정,특출하고 다방면적인 실력으로 국가의 최고리익을 수호하는 문제로부터 전사들의 생활상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직접 현지에서 장악료해하시였으며 뛰여난 능력과 식견,조직력으로 어떠한 중대하고 복잡한 정황이나 문제들도 가장 정확하게 신속히 처리해나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전선시찰은 이러한 일상적인 야전식관점,야전식사업방식의 발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전선시찰은 최고사령부가 언제나 최전방에 있다는것을 보여주었으며 장군님의 선군정치령역에서 전선과 후방이 따로 없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나라마다 군대가 있고 군최고사령관이 있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최전방에서 최전방으로 종횡무진하며 나라의 안전을 위한 작전을 직접 조직지휘한 례는 동서고금에 없었다.
최고사령부이자 곧 전선사령부이며 최고사령관이자 곧 전선사령관,야전지휘관이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특출한 선군관점,야전식혁명방식이야말로 절세의 애국자,위대한 선군령장만이 지닐수 있는 특유한 헌신의 투쟁관,혁명관인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실록은 장군님께서 사생결단의 각오를 지니시고 야전식진두지휘로 련전련승을 떨쳐오신 헌신의 위인실록이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는 철의 신념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사회주의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생사기로의 엄혹한 시기에 선군의 의지를 더욱 굳히시고 결사의 각오로 위험천만한 최전연전선길을 끊임없이 걸으시였다.
최전연초소인 초도방어대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시찰은 야전식전선시찰의 절정을 이루었다.
주체85(1996)년 11월 23일,이날따라 마가을의 맵짠 바다바람은 초당 20m로 휘몰아치고 광란하는 파도의 높이는 2m를 훨씬 넘었다. 거기에다 구름덮인 하늘에서는 비방울까지 짓뿌렸다. 자그마한 배에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집채같은 파도가 모든것을 덮쳐버릴듯 요동하는 바다를 항해한다는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바다날씨가 몹시 나쁘니 가시더라도 좋은 날을 택하여야 할것 같다고,지금 형편에서는 작은 배로는 항해할수 없다고 절절히 간청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순풍에 돛을 달고다닌적이 있었는가고 하시면서 전사들을 찾아가는 나의 길은 그 어떤 풍랑도 막지 못할것이라고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배는 떠났지만 파도가 배머리를 한껏 들었다가 사정없이 내던질 때마다 그 충격은 실로 무시무시하였다. 그야말로 1분 1초가 10년맞잡이로 느껴지는 아짜아짜한 순간의 련속이였다. 드디여 사나운 풍랑을 헤치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타신 배가 가까스로 섬에 이르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선의 풍랑길을 헤쳐오신 로고는 언제인가싶게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격정속에,눈물속에 몸부림치는 군인들을 뜨겁게 고무하시며 그 길로 최고사령부 작전조 성원들과 함께 전방지휘소에 오르시였다. 이윽고 비범한 군사적예지로 적들의 력량배치와 움직임을 손금보듯이 꿰뚫어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적들의 음흉한 기도를 파탄시키고 초도를 철옹성같이 지킬수 있는 작전전술적명안들을 제시하시고 귀로에 오르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단행하신 초도에로의 항해길은 원쑤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기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는 결사의 공격침로였고 사회주의붉은기를 지키는 길에 특출한 공헌을 한 비범한 헌신의 돌격침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런 사생결단의 각오를 지니시고 끊임없이 이어오신 선군령도의 길에는 적의 총탄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판문점의 전선길도 있었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철령과 개잔령의 고개길도 있었으며 가슴을 조이게 하는 최전연의 가파로운 초소길들도 있었다.
오성산야전지휘소에로의 전선길은 위대한 장군님의 야전식활동방식의 숭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실례들중의 하나이다.
먹장구름이 무겁게 드리우고 비가 쏟아져내리던 어느날,전선중부의 지배적인 고지로 알려진 오성산의 가파로운 벼랑길로 야전승용차가 힘겨웁게 오르고있었다. 올려다보면 벼랑턱의 바위들이 당장 산사태를 낼듯 움씰거리는것만 같아 등골이 젖어들고 내려다보면 천길 낭떠러지가 눈뿌리 아찔하게 보여 머리칼이 곤두서는 이 고지길로 결사의 각오를 지니신 천출명장 김정일장군님께서 선군의 거룩한 자욱을 남기시며 오르고계시였다.
그런데 굽이굽이 안깐힘을 쓰며 오르던 야전승용차가 경사급한 어느 한 구배길에서 그만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정없이 지쳐내리던 야전승용차는 가까스로 멈추어서서 다시 톺아오르다가 또다시 지치고 지치여 끝내는 칼벼랑턱을 약간 앞에 두고 바퀴가 공회전을 하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꺼지는것 같았던 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체없이 어깨를 들이미시고 차를 떠밀어 위험을 극복하고 한치한치 톺아 드디여 오성산의 정점에 오르시였다. 한치만 잘못 짚으면 천길나락으로 떨어져야 하고 한걸음 후퇴하면 제국주의노예가 되여야 하였던 력사의 그 준엄한 분수령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생결단의 각오와 견인불발의 의지로 존귀하신 한몸을 그대로 내대시며 선군의 기치를 선명히 하시였다.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성산고지길을 여러차례 오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성산을 맑은 날이 아니라 칼바람이 소리치며 태질하는 날에도 오르시고 진눈까비 내리는 날에도 오르시며 변화되는 적정에 맞게 멸적의 전술적대안들을 밝혀주시여 우리 군인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위훈의 나래를 달아주시였다.
한번 올랐던 사람은 누구나 두번다시 오를념을 못하는 그야말로 험산준령인 오성산의 고지길,어느것이 길이고 풀숲이며 어느것이 낭떠러지인지 분간할수 없어 한걸음 옮기는것이 천리길을 헤치는것보다 더 힘든 말그대로 사선의 길인 이 전선길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마다 기꺼이 오르시였던것은 선군으로 제국주의자들에게 철추를 내려 사회주의를 지키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 성스러운 길,죽음을 각오하고 헤쳐오신 험난한 가시덤불길이 있어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 구원되고 혁명의 붉은기가 지켜지게 되였으며 강성대국을 향해 질주하는 오늘의 자랑스러운 현실이 펼쳐지게 되였다.
하기에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우리 혁명의 오늘의 승리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그처럼 어려웠던 때 오성산을 오르던 일을 잊을수 없다,오성산에 한번 올라가보면 우리의 선군정치가 얼마나 간고한 길을 걸어왔는가를 알게 될것이다라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런 결사의 의지를 지니시고 선군혁명의 전기간 하루와 같이 륙해공군부대들의 작전전투준비와 훈련을 지도하시였고 북방의 멀고 험한 공장들을 찾아 수십만리의 선군길을 이어오시였다.
이렇듯 동서고금의 그 어느 위인전기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위대한 장군님의 끝없는 로고와 헌신,결사의 의지로 이어진 야전식진두지휘가 있어 우리 군대와 인민은 력사의 역풍을 이겨내고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을 창조할수 있었다.
(2)
우리 당의 선군정치실록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야전식생활을 하시며 불면불휴의 선군대장정을 빛나게 수놓아오신 헌신의 인간실록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를 더욱더 전면적으로 실현해오신 최근시기들에 야전식생활기풍을 높이 발휘하시였다. 식생활도 야전식으로 하시고 주무심도 복장도 모든것을 야전식으로 일관시키시는것이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유한 야전식생활기풍이다.
선군정치실록의 갈피갈피에 새겨진 가지가지의 사연깊은 혁명일화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야전식생활의 숭고한 높이를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달리는 야전승용차를 《집무실》,《작전실》로 삼으시고 비바람 부나 눈보라 치나 한시도 쉬임없이 전선에서 전선으로 이어가신 선군장정의 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드신 식사는 한덩이의 줴기밥이 아니면 죽 반공기,때로는 한줌의 가마치가 전부였으며 그것도 시간이 모자라 번지시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주체87(1998)년 4월 15일 태양절을 맞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아끼고 사랑하시던 병사들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하시며 전선동부의 한 최전연부대를 찾으시여 군인들의 생활을 세심히 보살펴주신 다음 군인들과 함께 야전식으로 식사를 나누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하신 점심상에 둘러앉게 된 부대장병들은 식탁우를 보는 순간 왈칵 쏟아져내리는 격정의 눈물을 걷잡지 못하여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크지 않은 줴기밥에 몇가지의 보통나물채,이것이 가장 뜻깊은 날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드시는 점심식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휴식시간은 달리는 야전승용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 쪽잠이 기본이였고 하루 주무시는 시간은 불과 2시간도 되나마나 하였으며 전선길에서 며칠밤을 꼬박 새우시는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복장도 사계절 변함없이 야전식으로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봄,여름,가을에는 야전복차림인 수수한 잠바옷차림으로,겨울에는 야전용모자에 군용솜외투차림으로 전선길을 이어가시였으며 초소의 병실에서 전사들이 리용하는 보통의자에 앉으시여 야전리발도 하시는 감동적인 화폭도 펼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사들속에 계시는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하시며 언제나 초소의 전사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지휘관이 되시여 금잔디 덮인 전호가에서 전사들이 준비한 소박한 공연도 끝까지 보아주시고 때로는 야식장에서 격식없이 야전식사도 나누시였다. 멀리 있는 초소의 병사들이 적적해할세라 그들을 찾으시여 단란한 분위기속에서 전사들의 응석을 받아주시며 수령과 전사들사이의 뗄래야 뗄수 없는 혈연적뉴대의 숭고한 화폭을 펼쳐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야전식생활은 장군님께서 지니신 조국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병사애의 숭고한 발현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요일과 명절날의 휴식도 선군혁명령도의 길에 다 바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언제 한번 휴식에 대해 생각하신적이 없으시였다. 오히려 인민들의 행복한 삶의 요람을 지켜주는것을 더없는 삶의 보람과 긍지로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휴식일도 없이 온종일 부대와 구분대들을 현지시찰하시였다.
사연많은 그러한 날들가운데서 추위가 몹시 심하였던 주체85(1996)년말에 진행하신 현지시찰은 오늘도 감동적인 혁명일화로 전해지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해의 말에 진행하신 김일성정치대학,근위 서울류경수105땅크사단,강건종합군관학교에 대한 현지시찰은 휴식일도 없이 걸으신 감동적인 선군장정의 대표적실례이다.
그리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해의 12월 24일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5돐기념일에는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공연을 보아주시고 12월 31일에는 조선인민군의 한 구분대를 현지시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 다음날인 눈보라 치는 주체86(1997)년 1월 1일 설날과 1월 2일 휴식일도 역시 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로 고스란히 바치시였다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혁명일화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휴식일은 물론 설날과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과 자신의 탄생일에도 쉬임없이 인민군부대와 구분대를 찾아 전선길을 걸으시였다.
주체84(1995)년 설날에 다박솔초소에 대한 현지시찰로 선군정치를 보다 높은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펼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6(1997)년과 주체87(1998)년 설날에는 만경대혁명학원과 조선인민군 한 군부대를 찾으시였으며 주체86(1997)년 4월 15일은 최전연초소인 1211고지,주체87(1998)년 4월 15일은 조선인민군 한 군부대와 조선인민군 금성친위부대를,주체88(1999)년 2월 16일은 바람세찬 북방의 군부대동기훈련장에서 온 하루를 보내시였다.
사실 세계의 그 어느 나라 령도자나 군통수자들치고 정기적인 휴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각 분야의 대리인,고문들을 두고 정치를 하면서도 주말,월말휴식과 휴양,휴가를 놓칠수 없는 생활일과로 삼고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한 여름궁전으로,겨울에는 따스하고 온화한 겨울궁전으로 옮겨가며 휴식을 즐기는것을 응당한 권리로 여기고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언제한번 휴식일을 정해놓고 쉬시는적이 없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히려 자신께 있어서는 문건을 보고 현지지도하는것이 《휴식》이라고 하시면서 단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군부대를 찾아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신다.
전선과 후방,동서를 가르는 최전연의 그 어디든 조국을 지켜선 우리 군인들이 있고 초소가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위험한 곳이라도 다 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선군혁명령도의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주체86(1997)년 3월 어느날 온하루를 군부대현지시찰로 보내시고 련이어 집무실에서 밤을 꼬박 지새우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벽 일찍 또다시 어느 한 군부대를 찾아 떠나시였다.
군부대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가지 전투기술기재들의 성능을 료해하시느라 점심식사를 번지시였다. 점심시간이 퍽 지났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다른 구분대를 찾으시였다.
일군들이 이제라도 점심식사를 하셔야 한다고 간절히 말씀올리자 오히려 일군들에게 오늘 일정이 무척 급한데 량해를 구한다고 하시면서 또다시 다른 군부대를 찾아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이윽고 부대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부대의 실태를 세심히 료해하시고 부대가 나아갈 앞길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그때는 벌써 밤 12시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부대를 찾아 떠나시였다.
이렇듯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지시고 겹쌓이는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초소와 훈련장,군항과 비행장을 끊임없이 찾고찾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헌신적인 로고와 심혈을 전해주는 사연들은 이루다 헤아릴수 없다.
인류력사에는 혁명에 대한 남다른 헌신성으로 하여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 위인과 명장들의 감동적인 일화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력사는 아직 1년 365일 그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해지는 저녁과 동트는 새벽을 작전실과 전선길에서 맞으시며 모든것을 혁명을 위해 바쳐나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같으신 정력적인 혁명가,헌신적인 령도자를 알지 못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도 인간이시다. 피로하시면 휴식하셔야 하고 식사시간이 되면 식사를 하셔야 한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쪽잠과 줴기밥마저 미루고 번지시며 1분 1초를 선군혁명위업에 바치시는것을 락으로,긍지로 여기시였으며 그 과정에 야전식생활은 움직일수 없는 하나의 습관으로 굳어지시였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년 12월 어느날 일군들에게 이제는 쪽잠에 습관되여 푹신한 침대가 불편해보인다고,자신께 있어서 제일 단 잠은 야전승용차안에서 잠간 눈을 붙이는 쪽잠이고 제일 단 밥은 줴기밥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은 이것을 고생으로 생각한적이 없으며 오히려 여기에서 커다란 긍지와 보람을 느끼군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93(2004)년 10월 4일에도 자신께서는 언제나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전선길을 끊임없이 이어나가는데서 삶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군 한다고,궂은 날,마른 날 가림이 없이 조국과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가는 전선길은 나의 삶과 투쟁의 전부라고 하시면서 전선을 끊임없이 찾아가는것은 자신의 중요한 일과의 하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일찌기 그 누구도 지녀본적이 없는 고결한 풍모를 지니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나가시는 위대한 령도자,천출명장의 숭고한 헌신의 세계가 그대로 집약되여있다.
참으로 우리 당의 선군정치실록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사생결단의 의지를 지니시고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사회주의수호전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영광스러운 력사,위대한 헌신의 위인실록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오랜 력사적나날들을 거쳐 필승의 보검으로 세련시켜오신 선군정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한 우리 조선은 영원히 필승불패할것이며 선군시대의 미래는 더욱더 휘황찬란할것이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lawrenceyeah/15544667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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