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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조선의 고유령토에 대한 《령유권》론은 황당무계한 궤변

(평양 7월 30일발 조선중앙통신)30일부 《로동신문》은 《조선의 고유령토에 대한 <령유권>론은 황당무계한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된 개인필명의 다음과 같은 론설을 실었다.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의 신성불가침의 령토인 독도를 빼앗아내려고 갖은 권모술수를 다해온 일본반동들이 오늘 독도강탈책동을 그 어느때보다 로골적으로 감행하고있으며 그들의 령토팽창기도는 무모한 단계에 이르고있다.
일본반동들은 최근 10년남짓한 기간에 국회와 시마네현의회에서 무려 150여차에 걸쳐 독도문제를 론의하였다.지난해에만도 일본집권자가 년초부터 독도는 《일본령토》라고 망언한데 이어 일본우정공사에서 독도를 《일본령토》로 표시한 《독도우표》를 발행하였다.올해에 들어와서 일본집권계층들속에서 독도《령유권》론이 더욱 불거지고 《외교청서》를 통해 독도가 《일본땅》이라는것이 정책화되였다.일본교육당국자는 독도《령유권》을 거듭 주장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러한 교육을 줄것을 훈시하였다.이 모든 사실들은 일본의 독도강탈과 조선재침책동이 날이 갈수록 더욱 본격화되고있으며 그것이 매우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다는것을 웅변적으로 실증해준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은 그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는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날조이고 력사위조이며 생억지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의 침략적본성은 변하지 않았으며 결코 변하지 않을것입니다.》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주장은 독도강탈야망의 발로로서 어느모로 보나 극히 부당한 궤변이다.력사의 진실이 그것을 여지없이 론박해주고있다.
독도는 력사적으로 조선령토의 불가분리의 구성부분으로 되여 우리 민족의 관할하에 존재하여왔다.
우리 나라의 독도령유는 근 1,500년의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독도를 맨 처음으로 발견하고 국토에 편입시킨 나라는 조선이며 근대법적요구에 맞게 독도령유권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내외에 선포한 첫 국가도 조선이다.
독도는 자연지리적으로나 인간의 경제생활령역에서 력대적으로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간주되여왔다.
울릉도의 동남방 49mile,일본의 오끼도로부터 83mile 떨어진 해상에 위치하고있는 독도는 동서 량쪽에 두개의 기본섬과 수많은 암석으로 이루어져있다.여기에는 물개의 일종인 해려가 수많이 서식하고있으며 독도주위의 바다속바위들에서는 다시마,미역,성게,전복 등 해산물이 무진장 번식하고있다.그 부근의 바다에는 고래,상어,오징어를 비롯하여 각종 어류들이 회유하고있다.그런것으로 하여 울릉도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독도를 자기들의 섬으로 관할하면서 어장으로 널리 리용하였었다.
독도의 본섬인 울릉도는 삼국시기에 우산국으로,고려시기에는 무릉 또는 울릉도로 불리워왔었다.울릉도의 명칭이 달라짐에 따라 그의 부속도서인 독도의 이름도 여러번 변경되였다.이 섬은 리조시기에 와서 우산도 또는 삼봉도로 불리우다가 리조말기에 독도라는 이름으로 고착되였다.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우리 나라가 관할하였다는 자료들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여러 력사문헌들에 수많이 기록되여있다.
세종실록 권 153,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는 무릉도와 우산도를 렬거하고 이 두 섬의 위치와 호상관계를 《우산,무릉 두 섬은 현(울진) 정동쪽 바다가운데 있는데 두 섬의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할 때는 서로 바라볼수 있다》고 밝혔다.15세기에 편찬된 우리 나라의 귀중한 민족고전인 지리책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울진현소속 도서로서 우산도와 무릉도를 기록하였다.세종실록 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 밝힌 무릉도는 울릉도를,우산도는 독도를 가리키는것이였다.
이러한 력사기록들은 독도가 력사적으로 울릉도에 속한 섬이였으며 우리 나라의 령토였음을 자료적으로 명백히 확증해주고있다.
독도가 조선령토라는것은 일본측사료들도 확증해주고있다.
일본의 서남지방 어민들과 해적무리들은 일찍부터 울릉도의 풍부한 향나무,대나무,산삼,해려 등 특산물과 함께 주변바다의 무진장한 수산자원을 탐내여 이곳에 수시로 기여들었다.그러나 그때마다 울릉도의 섬사람들과 내륙의 연해어민들의 단호한 반격을 받고 쫓겨가군 하였다.17세기말 동래의 애국적어민인 열혈청년 안룡복과 그 일행이 울릉도에 침입하여 도벌을 일삼고 물고기들을 마구 잡던 일본어민들과 해적떼들을 몰아내고 일본봉건정부당국으로부터 독도가 조선땅이라는것을 확인하는 국제적담보를 받아낸것은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이에 대한 력사적사실들은 조선측사료인 《숙종실록》,《동문휘고》,《통문관지》,《중보문헌비고》 등 민족고전들과 일본측사료인 《조선통고대기》,《본방조선왕복서》,《통항일람》 등에 상세히 기록되여있다.
실례로 일본사료 《통항일람》(권 37)에는 안룡복일행이 일본의 호끼주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의 소속문제를 담판하고 관백(일본봉건시기의 최고실권자)에게 상소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이 소개되여있다.
그에 의하면 1693년과 1696년 두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간 어민출신의 열렬한 애국자 안룡복은 자기를 《울릉,우산 량도감세장》이라고 칭하며 호끼주 태수와의 담판을 벌렸다.구체적인 력사적사실자료들과 법률적근거자료들을 가지고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독도가 엄연한 조선령토라는것을 론박할 여지없이 힘있게 론증하고 일본어민들과 해적떼들의 우리 나라 령토침입과 자원략탈행위를 일본정부가 책임지고 엄격히 단속할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안룡복의 사리정연한 론거와 정정당당한 주장앞에 무릎을 꿇은 호끼주 태수는 중앙정부에 보고할것을 다짐하였다.당시 일본정부 도꾸가와막부는 이 사실을 보고받자 즉시 조선정부에 울릉도와 독도가 엄연한 조선령토라는것을 공식인정하고 이 섬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침입과 출어작업을 금지시키겠다는것을 담보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여왔다.이것은 일본자체가 수백년전에 벌써 독도가 조선의 섬이라는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력사적증거이다.
그후 도꾸가와막부정권은 일본인들의 독도침입을 엄격히 통제하였고 이 섬에 불법침입한자들을 엄벌에 처함으로써 우리 나라와의 공약을 엄수하였다.
이러한 력사적사실자료들은 독도가 오래전부터 움직일수 없는 조선령토라는것을 잘 알수 있게 해준다.
독도는 국제법적으로 보아도 우리 인민의 신성한 조국강토의 구성부분이다.
오늘 일본집권계층들은 령토점유에 대한 국제법적원칙의 하나인 선점의 원칙을 내들고 그 조건으로서 1905년 2월 22일부 《시마네현고시 40호》를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이른바 《법률적근거》로 삼고있다.그러나 《시마네현고시》조작은 다른 나라보다먼저 점유하는 령토점유에 대한 선점의 원칙과 관례를 란폭하게 유린한 일제침략자들의 날강도적령토강탈행위였다.
이른바 《시마네현고시》대로 본다면 1905년에 일본이 처음으로 독도를 발견하고 점유한것으로 되여야 한다.그런데 이미 력사적사실자료를 통하여 고찰한바와 같이 독도는 천수백년전에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선점된 섬이였다.
선점한 령토에 대한 국가적의사표시를 하여야 하며 그것이 대외적으로 공인되여야 한다는것은 령토점유에 대한 국제법의 원칙적요구의 하나이다.령토점유는 국가의 국제법상행위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행위의 하나인것만큼 그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의사표시로 되여야 한다.우리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도가 조선령토라는데 대한 국가적의사표시를 하였으며 그에 대하여 대외적으로 공포하였다.우리 나라가 한때 감세관을 파견하여 울릉도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수토관이 수시로 침입하는 왜구들을 몰아내는 법률적행위를 한것 등은 독도선점권에 대한 국가의 의사표시 및 대외적공포의 증시로 된다.
일본의 지방자치체의 하나에 불과한 시마네현이 일본국가를 대표할수 없다는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리치이다.한마디로 말하여 《시마네현고시》는 아무런 법률적구속력도 가질수 없는 비법무효한 휴지장에 불과한것이였다.따라서 일본당국자들이 《시마네현고시》를 《법률적근거》로 내들고 독도를 뻐젓이 정부의 토지대장에 등기하고 해려포획의 면허제를 실시한 행위자체가 국제법상원칙과 요구를 짓밟고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사기협잡,비법,불법행위였으며 파렴치한 령토강탈야망의 발현이였다.
1943년에 채택된 《까히라선언》과 1945년 7월 26일에 채택된 《포츠담선언》들도 제2차 세계대전후 독도의 법적지위를 규정해주는 국제법적기준으로 된다.
《까히라선언》은 《3대국의 목적은…그리고 만주,대만,팽호렬도 등 일본국이 청국인들로부터 도취한 모든 지역을 중국에 반환하는데 있다》고 밝히였으며 조선에 관한 조항에서는 《조선인민의 노예상태에 류의하여 마땅히 조선을 자유롭고 또한 독립한것으로 되게 하는 결의를 가진다》고 선언하였다.
《포츠담선언》 제8항에는 《까히라선언의 조항은 리행되여야 하며 또 일본국의 주권은 혼슈,혹가이도,규슈,시고꾸 및 우리들이 결정하는 제소도에 국한된다》고 규정되여있다.
이 두 선언의 내용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패망한 이후의 일본의 령역을 규정해준 국제법적기준으로서 1895년 청일전쟁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일제침략자들이 강탈한 식민지예속국들과 강점지역들의 령유권을 박탈하며 일본령토는 청일전쟁이전 시기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는것을 의미한다.
보는바와 같이 독도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령유권》주장은 아무러한 법률적근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당국자들은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의 일부 련합국들의 정책선언으로서 법률적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느니 뭐니 하고 생억지를 부리면서 저들의 독도《령유권》론을 합리화해보려 획책하고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항복조건으로서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을 접수한데 이어 그해 9월 2일 일본국가대표가 항복문서에 수표한 사실은 《까히라선언》과 《포츠담선언》이 전시 일부 련합국들의 정책성명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일본의 령유권을 규제하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국제법적문건들로 된다는것을 말해준다.
제반 력사적사실이 보여주는것처럼 독도는 지리적으로나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실공히 조선령토이며 따라서 그 무슨 《독도문제》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다.일본은 《독도문제》를 조일사이의 거론의 대상으로 삼을 그 어떤 명분도 리유도 없다.
일본의 독도《령유권》론은 명백히 날강도적인 령토강탈론으로서 추호도 정당화될수 없으며 우리에게 절대로 통할수 없다.일본이 독도《령유권》론을 제창할수록 그것은 그들의 령토강탈야망과 재침흉계를 더욱 드러내보여줄뿐이다.
일본반동들은 력사와 현실을 똑바로 보고 독도강탈과 조선재침야망을 실현하려는 어리석은 망상을 버려야 한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bumix2000/490755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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