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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력사교과서》가 들고나온 《한4군》,《임나일본부》설의 정체

(평양 3월 14일발 조선중앙통신)일본이 2006년부터 사용하기로 한 《새 력사교과서》에 과거 자기 어용사가들이 심히 외곡한 조선력사의 많은 부분들을 그대로 올려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있다.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20세기초 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저들의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하고 조선인민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력사외곡행위를 광란적으로 벌리였다.
그 대표적실례의 하나가 조선은 력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여 있었다는것을 《근거》짓는 반동적인 《한4군》설과 《임나일본부》설이다.
그 골자는 한나라 무제가 B.C.108년에 고조선을 멸망시킨 다음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조선일대에 자기 나라의 식민지 《한4군》의 하나인 락랑군을 설치하였고 한강이남지역은 일본 《야마또조정》의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가 수백년간이나 통치하였다는것이다.
그러나 어용사가들의 이러한 궤변은 해방후 공화국 력사학계에 의하여 여지없이 론박되였다.
《한4군》은 조선반도가 아니라 료동일대에 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302년에 3만명의 고구려군대가 진나라의 현도군을 공격하여 8,000여명을 사로잡아 평양에 데려오고 311년에는 료동 서안평을 점령한데 이어 313년과 314년에 료동에 있던 락랑군을 격멸하였으며 318년에는 현도군까지도 료서로 몰아내고 그 지역을 차지하였다.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임나일본부》도 조선의 가야지방에 설치된 일본의 식민지통치기관이 아니라 아직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였던 시기 서부일본 기비지방(일본의 오까야마현일대)에 형성된 조선계통 가야소국안에 있던 야마또국가의 림시행정기관이였다.
일본이 엄연한 력사적사실로 그 허황성이 드러난지 오랜 《한4군》설과 《임나일본부》설을 다시 들고나온것은 저들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재침야망실현에 합법적인 외피를 씌워보기 위한 반동적행위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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