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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조선 《조선침략의 범죄사를 외곡,은페한 그릇된 력사교과서》

(평양 3월 17일발 조선중앙통신)17일부 《민주조선》은 《조선침략의 범죄사를 외곡, 은페한 그릇된 력사교과서》라는 제목으로 된 다음과 같은 개인 필명의 론설을 실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한 력사를 잊지 않고있습니다.》
일본의 근대력사는 조선에 대한 침략과 략탈로 일관되여있으며 일본 자본주의의 《성장》에는 조선인민의 피와 땀이 슴배여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력사의 엄연한 진실이다.
그러나 오늘 일본반동들은 지난 날 일제가 우리 인민앞에 저지른 범죄의 력사를 은페하며 저들의 침략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갖은 교활한 책동을 다하고있다.
그 대표적실례가 력사교과서개악책동이다.
최근 일본당국은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항의와 규탄에도 불구하고 과거 일제가 조선과 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고 이 나라들에서 감행한 야수적만행들을 은페,축소,미화분식한 력사교과서를 검정통과시켜 발행하였다.
이번에 검정통과된 《새 력사교과서》의 근대사 부분 서술에서 가장 큰 문제로 되는것은 조선강점을 위한 일제의 책동과 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을 은페, 외곡한것이다.
《새 력사교과서》는 우선 조선에 대한 일제의 강도적침략론리인 《정한론》의 등장 경위와 그 본질을 교묘하게 은페하였다.
《정한론》은 19세기 중엽 사이고 다까모리를 우두머리로 한 사쯔마 번출신의 일본군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제창된 조선《정복론》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서는 1873년에 《일본의 개국 권고를 거절한 조선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하여 사족들사이에 무력을 배경으로 개국을 강박하자는 정한론이 대두하였다》고 서술함으로써 《정한론》이 마치도 국교를 맺자는 일본정부의 요구를 거절한 리조봉건정부의 《무례한》태도로 하여 발생한것처럼 진실을 교묘하게 외곡하였다.
《정한론》은 명치반동정부가 국내의 정치적위기의 해소와 자본주의시초축적의 출로를 조선에 대한 침략과 정복,식민지화에서 찾으려는 침략론리의 산물이였다.
조선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만들려는 《정한론》을 《개국론》으로 둔갑시키고 일본의 《개국》요구를 거절한 리조봉건정부의 자주권행사를 《무례》하다고 표현하면서 조선에 대한 무력침공을 정당화하려는 그자체가 파렴치한 력사외곡으로 된다.
알려진바와 같이 조선민족은 력대로 《왜구》의 침입과 략탈, 《임진왜란》의 참화와 동래 《왜관》무리들의 끊임없는 란동으로 하여 고통을 겪어왔다. 리조봉건정부가 이러한 일본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지는것은 응당하며 그들이 들고나온 《문호개방》을 거절한것은 지극히 정당한 자주권행사로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구실로 삼아 조선을 무력으로 정복할것을 주장한 《정한론》에 합법성을 부여 해보려는 일본반동들이야말로 파렴치 한자들이 아닐수 없다.
《새 력사교과서》는 또한 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사도 완전히 외곡하였다. 《교과서》는 《일본은 조선의 개국 후 근대화를 시작한 조선에 대하여 군제개혁을 원조하였다》고 서술함으로써 마치도 조선의 근대화가 저들이 강요한 《강화도조약》에 의하여 시작된듯이 외곡하였으며 따라서 일본이 우리 나라 근대화의 서막을 열어준것처럼 묘사해놓았다.
그리고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을 《친일파》로 규정하여 1884년 부르죠아개혁이 일본의 조종밑에 진행된것처럼 외곡하였으며 실패원인도 청나라의 군사적간섭에만 국한시킴으로써 일본의 비렬한 배신행위를 교묘하게 은페하였다.
이미 밝혀진것처럼 우리 나라에서의 근대화는 《개국》후에 시작된것이 아니라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사회발전의 합법칙적요구에 따라 이미 형성된 개화파에 의하여 힘있게 추진되고있었다.
일본이 우리 나라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는것은 력사적사실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비렬한 날조이다.
일본은 오히려 조선의 자주적인 근대화가 저들의 조선침략책동에 장애로 된다는것을 인식하고 그 과정을 백방으로 방해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정치자금해결을 위한 개화파의 활동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고 그를 파탄시켰으며 신식군대를 양성하려던 시도도 수포로 돌아가게 하였을뿐아니라 《갑신정변》당시에는 결정적인 순간에 왕궁호위에 동원시켰던 수비대를 철수시킴으로써 새 정권이 무너지도록 고의적으로 책동하였다.
또한 《갑신정변》이 실패한후에는 《한성조약》을 강압체결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빼앗아냈으며 1894년 갑오개혁때에는 혁신관료들의 개혁기구였던 군국기무처를 강제해산시키는 등 우리 나라의 근대화를 각방으로 방해해나섰다.
이것이 바로 《새 력사교과서》에서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주었다고 외곡서술한 력사적 진상의 일단이다.
력사외곡행위는 청일,로일전쟁의 침략적본질을 은페한데서도 나타나고있다.
청일전쟁과 로일전쟁은 조선에 세력을 뻗치고있던 청나라와 로씨야 세력을 몰아내고 저들의 독점적지배권을 구축하기 위하여 일본이 계획적으로 도발한 침략전쟁이였다.
그러나 《교과서》는 이 전쟁들을 조선을 자주적인 《독립국가》로 만들고 일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쟁이였던듯이 외곡서술하였으며 특히 로일전쟁을 당시 일본의 《존망》과 관련하여 할수없이 진행한 전쟁이였던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저들의 력사적범죄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조선이 《타국에 침해되지 않는 나라로 되는것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있어서 중요하였다》고 하면서 조선이 로씨야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일본을 공격하는 좋은 기지로 되며 섬나라인 일본은 자기의 방위가 곤난하게 되므로 전쟁을 벌렸다는 론리는 군국주의적사고방식이며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책동의 본질을 가리우기 위한 망설이다.
일본반동들은 《새 력사교과서》를 통하여 로일전쟁의 《승리》가 《식민지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준것처럼 서술하였으나 이것은 범죄의 본질을 가리우기 위한 궤변이다. 로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은 조선에 침투한 짜리로씨야세력을 구축하고 그로부터 《포츠머스강화조약》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저들의 《보호, 감리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또한 《가쯔라-타프트협약》과 《영일동맹》에 의하여 이미 미,영 세력으로부터 획득한 조선에 대한 《보호권》을 로씨야도 인정하게 함으로써 조선강점의 국제적《담보》를 든든히 마련하였던것이다.
《을사5조약》이 로일전쟁이 끝난 직후에 조작된것도 바로 이때문이였다.
더우기 격분하게 되는것은 《새 력사교과서》가 조선에 대한 일제의 국권강탈의 진상을 은페하고있는 사실이다.
일본은 이번에 《새 력사교과서》에서 《을사5조약》의 날조와 조선군대의 강제해산과 같은 력사적사실을 인위적으로 삭제하였다.
일제가 날강도적으로 조작해내고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의 《법적근거》로 삼은 《을사5조약》에 대한 력사적범죄사실을 삭제한것은 저들의 과거죄행을 무마하고 사죄와 보상의 근거를 없애버리려는 교활하고 비렬한 속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이다.
일본반동들이 《새 력사교과서》를 통하여 력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흑막속에 덮어버리려고 책동하는것은 철면피한 책임회피이며 인류의 량심과 정의에 대한 로골적인 도전이다.
《새 력사교과서》의 력사위조행위는 그것이 편찬자의 무식이나 사료에 대한 리해상의 착오에서 온것이 아니라 명백히 일본당국의 불순한 정치적목적추구의 산물이다.
일본반동들은 력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것을 《자학적인 행위》로 된다느니 뭐니 하면서 《력사의 필연으로 일어난 과거지사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사죄할것도 없다》는 식의 망발을 꺼리낌없이 내뱉고있다.
이것은 일본반동들이 얼마나 철면피한 랭혈의 무리들인가 하는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력사에 대한 일본반동들의 그릇된 태도는 력사과학의 신성한 리념과 사명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며 자라나는 새 세대들의 건전한 사상의식을 마비시키는 범죄행위로 된다.
동시에 지난 날 일제에 의해 모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우리 민족과 아시아인민들에 대한 또하나의 범죄행위이다.
범죄에 범죄를 덧쌓는 일본반동들의 행위가 종당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하는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부당한 력사위조행위는 일본을 도덕적파멸에로 이끌어갈뿐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일본반동들의 력사위조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며 일본으로부터 피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내고야말것이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lynxsquared/321826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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