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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님은 영원히 인민들과 함께 계신다》-그리스도교련맹위원장

(평양 7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11일부 《로동신문》은 《수령님은 영원히 인민들과 함께 계신다》라는 제목으로 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 강영섭의 수기를 실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7월이다.
경애하는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사람들은 만수대언덕으로 오르고있다.그리움의 대하에 실려 만수대에 올라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면 금시 그이의 자애로운 음성이 들려오는것 같아 솟구치는 격정을 누를길 없다.
생애에 그리도 많이 인민들을 만나시고 이야기를 나누신 수령님, 그 못 잊을 이야기들을 추억하며 사람들은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그이와 심장의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기는 바뀌여도 끝없이 계속되는 수령님과 인민들사이의 대화.
수령님은 오늘도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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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수령님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환히 안겨오는것은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말씀하시는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이다.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담은 사진들중에는 로동자들의 기름묻은 손을 잡아주시며 이야기를 나누시는 사진들도 있고 농민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시고 농사일을 의논하시는 사진들도 있다. 녀성들속에서 환히 웃으시며 담소하시는 잊을수 없는 사진들도 있다. 개학날 학교를 찾으시여 몸소 어린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고 때로는 로인들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안부를 물어주시는 그이의 영상을 우리는 TV와 사진으로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인생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어버이수령님처럼 한생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신분은 동서고금 그 어디에도 없다. 수령님은 한평생을 인민들속에서 사시였고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으며 인민들과 고락을 같이하시였다.
언젠가 그이께서는 자신의 취미에 대해 묻는 미국 CNN TV방송회사 기자단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시였다.
《나의 생활에서 특별히 내놓고 말할만 한 취미란 따로 없습니다. 당신의 물음에 굳이 대답한다면 책읽기를 좋아하고 인민들속에 들어가 인민들과 함께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나의 취미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인민들과 함께 지내시며 이야기를 나누시는것을 더없는 즐거움으로,락으로 여기신 경애하는 수령님.
나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고,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라고,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전지전능하고 위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고, 그래서 나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하시며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신 어버이수령님이시다.
그이께서는 항일혁명시기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나날에 사람중심의 위대한 사상인 주체사상의 원리를 발견하시였으며 해방직후에도 고향 만경대가 아니라 강선으로 가시여 로동계급부터 만나시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새 조국건설의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미국의 강도적인 무력침공을 반대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나날 포연탄우를 헤치시며 수령님께서 만나주신 인민군용사들과 인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속에는 화선에서 위훈을 세운 영웅들도 있었고 남자들을 대신하여 전시식량을 보장한 후방의 녀성보잡이들도 있었다. 깊은 밤 일시적후퇴의 령길에서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간다며, 이 길이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라며 수령님께 힘과 용기를 북돋아준 나어린 병사도, 소달구지를 몰고가던 늙은이도 있었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전후의 어려운 복구건설도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이끌어가시였고 자주,자립,자위하는 부강조국도 인민들속에 계시면서 일떠세우시였다.
가장 지혜롭고 박식한 선생은 인민이라고, 인민들속에 철학도 있고 경제학도 있고 문학도 있고, 그래서 인민들속에 들어가 인민들에게서 배우고있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 언제인가 농촌을 현지지도하시는 수령님과 동행하던 이와이 아끼라 전 일본총평고문이 주석님께서 자주 이렇게 현지지도를 하시는가고 물음을 드렸을 때에도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지도를 하는것이 아니라 인민들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을뿐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대중의 정서와 지향도 파악하시고 걸린 문제의 해결방도도 찾으시고 가장 옳바른 로선과 정책도 수립하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인민들과 나누신 수령님의 그 많고많은 이야기들에는 조국과 인민에 대한 그이의 무한한 사랑과 헌신이 깃들어있다. 그이께서는 인민이 있는 곳이라면 조국땅 그 어디건 다 찾아가시였다. 광부들이 일하는 수천척 지하막장에도, 불볕내리쪼이는 전야에도, 쇠물쏟아지는 용해장에도, 최전연분계선마을에도 수령님은 가시였다.
수령님과 인민은 언제나 뗄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인민이 있는 곳엔 수령님께서 계시였고 수령님께서 계신 곳엔 인민이 있었다.
지금도 수령님께서 해방직후 우리 집을 찾으시여 창덕학교시절 나의 어머니가 해드린 수수한 비지밥을 달게 드시던 일을 회고하시며 이제라도 인사를 받아달라고 하시던 은정깊은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들사이에는 서로 나누어가는 이야기의 류형이 많다. 부모와 자식간의 이야기,친구들사이의 이야기, 스승과 제자사이의 이야기, 선배와 후배사이의 이야기, 상급과 하급사이의 이야기, 정치인과 일반시민들사이의 이야기, 성직자와 신자들사이의 이야기…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도 목사는 설교를 하고 신자들은 그의 설교를 듣는다. 나도 미국과 일본,카나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각계층의 목소리,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 조국에서 수령님과 인민들사이에 오고간 이야기들처럼 숭고하고 진실하고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디서도 볼수 없는 가장 뜨거운 가슴속대화, 사상과 뜻과 의리와 정으로 통한 심장의 언어소통이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언제인가 자신께서는 공장에 가면 로동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농촌에 가면 농민들과 마주앉아 이야기한다고, 인민들은 나를 만나보고싶어하며 나는 인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싶어한다고, 나는 인민들을 만나는것을 기쁘게 여기고 인민들은 나를 만나는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그 뜻높은 세계를 어찌 다 펴낼수 있으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을 선생이라고 하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즐겨들으시였지만 사실 그 인민의 참다운 스승은 수령님이시였다.
나의 아버지(강량욱)의 회고에 의하면 수령님께서는 1923년 팔도구에서 조국에 나오시여 칠골의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면서 방학때면 만경대에서 야학을 여시고 우리 글과 력사,지리,산수,노래를 배워주시군 하시였다. 그때마다 수령님께서는 얼마나 소탈하고 박식하고 이야기도 구수하게 잘하시였던지 아이들은 물론 마을어른들까지도 10대의 어리신 그이를 김성주선생이라고 존경해마지 않으며 따랐다고 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맑스-레닌주의고전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조선인민과 세계인민들의 해방투쟁력사도 깊이 연구하시였으며 철학이면 철학, 문학이면 문학, 경제학이면 경제학, 의학이면 의학 모든 분야에 막힘이 없이 박식하시였고 뛰여나시였다. 종교교리도 환히 알고계시여 종교인들과의 사업을 능동자재하게 하시였고 여러개의 외국어를 소유하시여 전문가들과의 담화에 앞서 외국기술도서들까지 보시며 몸소 자료들을 준비하신 수령님이시였다.
이렇듯 세상만사에 능통하시고 도통하신 수령님께서는 한두번 나누시는 이야기로 어린이로부터 늙은이,종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자기들의 속마음을 죄다 털어놓게 하시고 처녀들이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마음속생각》까지 귀속말로 다 터놓게 하시였다. 오랜 그리스도교신자인 나의 아버지도 하느님을 믿어도 서양의 하느님을 믿지 말고 조선의 하느님을 믿으라고 가르쳐주신 수령님의 말씀에서 참다운 애국의 철리, 신앙의 참뜻을 새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신앙생활에 분발하여나섰고 그 길에서 부주석의 중임까지 받아안고 일하였다.
인민에겐 위대한 태양이시지만 한없이 겸허하게 한생을 인민의 아들로 사신 어버이수령님.
인민들은 사랑과 은정이 넘치는 수령님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마디마디 한없는 매혹과 숭배의 감정을 북돋아주는 그이의 말씀에서 수령님은 이 세상 누구도 따를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라는것을 감동깊게 새겨안았다.
인민들과의 이야기로 혁명투쟁의 전로정을 수놓아오시고 인민들과의 이야기로 승리와 영광의 력사를 펼쳐오신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각까지 인민들을 찾아가시고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1993년 8월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에 대한 머나먼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신지 이틀도 안되여 또다시 황해남도의 연백벌을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동트는 이른새벽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배천군과 청단군안의 5개 농장을 련이어 현지지도하시면서 농민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며 농사일과 관련한 대책을 의논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렬차에 돌아오시여서는 점심시간마저 바치시며 일군들과 농사문제와 관련한 협의회를 가지시였다. 나는 황해남도의 농사가 중요하기때문에 어떤 때에는 국가주석을 그만두고 황해남도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도하는 고문노릇을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군 한다는 그이의 말씀에 일군들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고 한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94년 7월 최고 38.4℃가 되는 무더위속에서도 불편한 몸으로 이틀간이나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여시고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나는 지금까지 인민을 믿고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인민들속에서 살아왔다고, 나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쳐온 한생이였으며 인민들과 함께 투쟁해온 한생이였다고, 나는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 인민들과 함께 있을것이라고 하신 수령님의 7월의 그 절절한 말씀을 생각하면 자꾸 목이 꽉 메여온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평생 가슴속에 안고 사신 그 인민속에는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가 다 함께 있었다.
지금도 나는 1993년 1월 2일 해외동포들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옵던 감격을 잊을수 없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새해 자신의 첫 손님이라고 하시며 건강을 위해 잔도 들어주시고 이야기도 나누시면서 종교인들도 참석한것을 헤아리시여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각계각층 동포들을 민족애로 일깨우고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묶어세울 방도를 따뜻이 가르쳐주시였다.
다음해인 1994년 1월 2일에도 나는 우당,종교단체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고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해 적극 노력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았다. 이렇게 우리들과의 이야기로 새해의 첫 집무를 시작하신 수령님께서는 1월말에는 박보희를 특별고문으로 하는 《금강산국제그룹》대표단을, 3월에는 재도이췰란드교포학자를, 4월에는 재로씨야 정일심동포가족일행과 국제태권도련맹 최홍희총재 그리고 재미,재도이췰란드교포인사들, 재미교포녀류기자 문명자를, 6월에는 총련의장과 남조선 《대우그룹》대표 등 여러 해외교포 및 남조선인사들을 련이어 만나시고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뜻깊은 이야기들을 나누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무르익히시여 성사를 눈앞에 두게 되였던 북남최고위급회담은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남녘인민들과의 상봉을 현실로 펼쳐갈 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안아오기 위한 민족의 중대사였다. 이 력사적인 회담을 준비하시던 나날 자신께서 서울에 나가 30분만 연설해도 통일은 다 될것이라고,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세상에 무서울것 없는 강성대국으로 위용떨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던 수령님께서는 통일문제와 관련한 력사적문건에 《김일성 1994.7.7.》이라는 친필을 남기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 새기신 아홉자의 글발.
여기에는 수령님께서 해방직후부터 장장 50년가까이 세월의 언덕을 넘으시며 남녘동포들에게 하고싶으시였던 이야기들이 깊은 뜻으로 함축되여있다. 통일된 강산에서 7천만겨레에게 하시려던 그 이야기가 다 새기여져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나서부터 일생을 수령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보통날에도 수령님의 이야기, 뜻깊은 명절날에도 수령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자나깨나 수령님의 이야기를 고대하고 그이의 말씀에서 새 힘과 용기를 얻군 하였다.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주적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마음껏 누려온 우리 인민들에게 있어서 수령님의 이야기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삶의 젖줄기였고 기쁨이였으며 미래에 대한 신심과 락관이였다. 그것은 수령과 인민의 혼연일체의 결정체, 조국력사의 줄거리, 창조의 서사시, 통일번영의 일대기였다.
이 모든것을 우리 조국과 인민에게 안겨주신 수령님은 정녕 온 나라 인민의 친어버이이시였고 자애로운 스승이시였으며 민족의 구세주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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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 1995년의 첫아침을 맞았을 때 나만이 아니라 겨레의 가슴은 더욱 쓰리고 아팠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온 나라 인민이 즐겨듣던 수령님의 신년사, 그 귀에 익은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다시는 듣지 못한단 말인가.
그런데 꿈인가 생시인가. 수령님의 신년사가 TV로 울려퍼질줄이야. 그것은 절세의 위인의 멈춤이 없는 심장의 박동이 울리는 불멸의 메아리, 수령님의 영원한 신년사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온 나라 인민에게 수령님의 신년사를 다시 들려주신분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수령님을 못 잊어하는 인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헤아리시여 그리고 수령님을 영원히 높이 받들어모실 고결한 의리심으로 1994년 새해의 첫아침에 하신 수령님의 신년사를 다시 TV로 방영하도록 뜻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던것이다.
이날만이 아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하신 수많은 연설들과 담화들도 여러 부문별대회들과 모임들에서 일군들과 인민들이 육성으로 듣도록 해주시였다. 지금도 나는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 참가하여 수령님의 시정연설을 다시 듣던 감격스러운 일을 잊을수 없다. 그때에도 장군님께서는 당총비서로서 시정연설을 해주실데 대한 일군들의 제의를 만류하시고 수령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시정연설을 록음으로 회의장에 울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록영화 《위대한 생애의 1994년》과 《인민을 위한 길에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에서도 수령님의 육성을 편집해넣도록 하시여 사람들을 끝없이 격동시키시였다.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수령님의 이야기를 영원히 새겨주시기 위해 장군님께서는 주요계기들에 수령님의 연설을 신문에도 게재하게 하시고 뜻깊은 지난 태양절에는 《로동신문》을 비롯한 신문들의 1면에 어버이수령님께서 탄생 60돐을 맞으시면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을 비롯한 주요연설과 로작들을 게재하도록 하시였다.
위인이 계시여 수령님은 오늘도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 자애깊은 음성은 조선혁명박물관에서도 울리고 인민이 사는 모든 곳에서 울리고있다. 모두의 가슴에 뜨겁게 젖어드는 수령님의 그 이야기들은 전체 인민이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단결하여 그이의 령도를 잘 받들어나가야 한다는 간곡한 당부이고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부문별과업이며 미국이 아무리 제재를 가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자신만만한 배짱과 승리의 락관이며 조선민족은 모두가 단결하여 나라를 통일해야 한다는 애국의 호소이다.
사람들은 수령님의 이야기를 심장으로 새기며 그이의 유훈 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고있다. 탄부들은 석탄증산으로 수령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농민들은 성실한 땀으로 풍작을 마련하여 수령님께 보답의 이야기들을 드리며 과학자들은 과학연구성과를 안고 수령님동상으로 찾아가고있다.
나 역시 수령님이 그리워질 때면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뵙고 종교인들이 민족의 대단결과 통일을 위해 적극 노력할데 대한 그날의 수령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통일애국의 결의를 다지군 한다.
이 모든 감동깊은 화폭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선군조선의 영원한 모습으로 펼쳐지고있다.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숭고한 인민적풍모를 그대로 지니시고 언제나 군대와 인민들속에 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병사들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군인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고 은정을 베푸시였으며 군인들이 준비한 소박한 예술소품공연도 보아주시고 치하해주시였으며 그들의 훈련도 일일이 지도해주시였다. 최전연초소에서 군인들과 함께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어야 밥맛도 나고 잠도 잘 오고 기분도 좋다고 하시며 그이께서는 달리던 차도 멈춰세우시고 령길을 지켜선 초병과 이야기를 나누시고 어머니가 섰던 초소에 군복을 입고 선 딸의 장한 모습도 보아주시였으며 군인들과 윷놀이도 하시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 찾아가시는 공장과 농촌,건설장과 학교와 마을들에서도 령도자와 인민사이의 수많은 감동깊은 이야기들이 꽃펴나고있다.
1998년 1월 북방의 어느 한 공장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로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동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힘이 부쩍 솟는다고,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도 승리적으로 결속될것이라고 신심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로동자들은 장군님만 계시면 무서울것이 없고 못해낼 일이 없다고, 장군님 계시여 조국도,로동계급도 있다고 기운차게 대답을 드리였다고 한다.
그것은 전후 어렵던 시기 강선을 찾으시여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오늘의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하시며 모두의 가슴에 애국의 불씨를 지펴주시던 수령님께 로동자들이 쇠장대를 추켜들고 심장의 맹세를 드리던 그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선군길에 수놓아지는 장군님의 이야기는 오늘의 수령님 이야기이다. 장군님 음성도 백두산의 뢰성과도 같은 수령님의 그 쩌렁쩌렁한 음성 그대로이시고 장군님의 사상정신도 수령님의 그 애국애족의 사상정신 그대로이시며 빛발치는 장군님의 예지도 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 그대로이시다. 만사람을 한순간에 매혹시키는 장군님 특유의 친화력도 태양같은 뜨거움과 견인력을 지니신 수령님의 매력 그대로이시다.
모든것을 수령님식대로,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
장군님은 오늘도 이런 불변의 신조를 지니시고 풍파사납고 영광넘친 선군의 길을 인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며 헤쳐가신다.
선군령장의 감동깊은 이야기는 통일의 길에서도 아름답게 피여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였던 정주영선생과 그 일가, 문익환목사의 미망인인 박용길녀사, 미국에 있는 문명자녀류기자, 일본에 사는 남조선가수, 남조선정계인사들 등 수많은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을 만나주시고 동포애의 정어린 이야기로 그들을 통일애국에로 고무해주신 숭고한 풍모에도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이 그대로 어리여있다.
하기에 그리스도교신자이며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이였던 림창영선생도 평양을 방문하고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편지에서 《김일성주석님 타계하신 조국에 올 때 비감을 금치 못했으나 주석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지도자분께서 저뿐이 아닌 민족적량심을 지닌 동포들모두를 따뜻한 말씀으로 고무해주시고 통일성업에 이바지하도록 이끌어주시니 감탄막심이옵니다.》라고 피력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후날 봉수교회에 와서 우리들에게 장군님께서는 풍채가 좋으셨고 얼굴도 환하시였다, 저의 손을 잡아주시는 그이의 손에는 따뜻한 온기가 흘렀으며 송구스럽게도 저를 가리켜 해외조국통일운동의 원로이고 선각자라고 고무해주시는 목소리는 분명하면서도 우렁우렁하시였다, 웃으시는 모습에는 풍요한 인정이 넘쳐흘렀고 안광에는 예지가 빛났다, 순간적으로 가슴에 와닿는 느낌은 어쩌면 주석님과 꼭같으신 장군님이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격정어린 회고를 터놓았던 그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뵈온 동포들은 어버이수령님처럼 언제나 민족의 대단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며 모두의 마음을 하나같이 애국심으로 정화시켜 통일에로 분발시켜주시는 그이의 숭고한 동포애, 소탈하고 인정미 넘치는 풍모,자연과 사회를 종횡무진하시는 다방면적인 해박한 지식,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고 지루하지 않게 해주시는 언변술에 누구나 탄복을 금치 못하군 한다.
2000년 6월 북남수뇌상봉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빛나는 예지와 넓은 포옹력, 틀이 없는 파격적인 대화, 해박한 식견, 뜻이 깊은 독특한 유모아로 온 겨레의 다함없는 칭송을 받으시고 평양상봉을 성공에로 이끌어가시였던 사실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김대중대통령과 무려 4시간에 걸쳐 단독으로 진행하신 회담에서 시종 《우리 민족끼리》를 대화의 의제로 내세우시여 그것을 핵으로 하는 력사적인 6.15공동선언을 탄생시키시였다. 오늘 《우리 민족끼리》는 7천만이 누구나 공감하고 따르는 민족공동의 통일리념으로, 겨레가 만나면 웃으며 꽃을 피우는 통일이야기로 되였다. 얼마전 광주에서 진행된 6.15통일대축전장에서도 참가자들은 누구나 《우리 민족끼리》를 가지고 토론도 하고 구호도 웨치고 노래도 불렀다. 축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우리 그리스도교련맹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장군님의 《우리 민족끼리》가 통일세상을 만들어가고있는 벅찬 현실에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장군님의 이야기를 새겨보면 거기에는 민족의 자존심과 긍지를 세워주는 자주가 있고 겨레를 뭉치게 하는 단합이 있으며 6.15시대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지략과 열정과 힘이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해 6월에도 6.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던 남측 특사일행과 북남수뇌상봉 연고자들을 만나 오랜 시간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특사에게 평양에 처음 왔지만 우리는 하나의 피줄을 이은 동족이여서 구면같이 생각된다고 혈육의 정 넘치는 말씀을 하시고 이번에 6.15를 《우리 민족끼리의 날》로 정한것은 잘하였다고 하시며 자주통일의지를 피력하기도 하시였다. 오찬때에는 이렇게 만나니 의사가 소통되여 좋다고, 련애도 자주 만나야 되지 않는가고 하시며 북과 남의 상봉을 련애에 비기시여 좌중을 즐겁게 하시였다.
장군님의 접견을 받은 남측의 한 인사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을 직접 뵈온바에 의하면 그분은 군중과의 항시접촉으로 지극히 소탈하며 현실감각이 풍부하고 박식하여 상대를 곁눈 한번 팔새없이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이라는 목적지로 담화를 줄곧 이끌어가시였다고 자기의 인상을 피력하였었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심장의 이야기를 나누시던 인민들속에 꼭같은 어버이의 그 모습으로 우리 장군님 계시여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인의 이야기에 살고 위인의 이야기로 승리하는 선군시대, 조선은 장군님의 이야기로 통일번영할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하며 신심드높이 나아가고있다.
오늘도 래일도 우리 겨레는 수령님의 이야기, 장군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민족의 존엄과 영광을 만대에 길이 빛내여나갈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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