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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높은 문학재사 천세봉

(평양 5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작가 천세봉(1915-1986)은 조선인민이 자랑하는 문학재사들중의 한사람이다.

국보적인 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한 그는 김일성훈장수훈자이며 김일성상계관인이였다. 아시아, 아프리카작가협회 문학상인 로터스상도 받았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당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책에서 사업하였다.
함경남도 고원군의 소작농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생활난으로 학교를 중퇴한 후 머슴살이와 품팔이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취미와 감수성은 남달리 각별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품속에서 그의 갈망은 현실로 꽃펴났다.
그는 혁명문학을 건설하는데 앞장섰다.
총서 《불멸의 력사》중 장편소설들인 《혁명의 려명》, 《은하수》, 《조선의 봄》(유고작)과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중 제1부 《유격구의 기수》, 제2부 《사령부로 가는 길》을 훌륭히 창작하였다.
늘 《나의 몸이 말이라면 정신은 채찍이고 손은 박차입니다.》라고 말하며 놀라운 속도로 작품들을 창작하군 하였다. 장편소설이라도 6개월을 넘겨본적이 없다.
원고가 2,000여매인 장편소설 《대하는 흐른다》 창작은 60일도 안되였으며 오늘도 조선인민의 사랑을 받는 장편소설 《석개울의 새봄》(1, 2, 3부) 창작때에는 하루에 200여매의 원고를 썼다고 한다.
《우리 작가들이 현실을 연구한다는 문제는 생활의 실천자인 인간을 연구하는 문제입니다.》라고 주장하며 작품들에서 인간의 성격과 생활을 섬세하게 파고들어 개성적인 내면심리세계를 깊이있게 그려냈다.
그가 말년에 써낸 장편수기 《작가수업 40년》은 지금도 작가들과 문학애호가들속에서 창작생활의 훌륭한 교과서로 널리 애독되고있다.
천세봉의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lawrenceyeah/1572105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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