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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위인의 신묘한 군사적지략이 안아온 승리

(평양 6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은 보천보전투(1937.6.4.)의 빛나는 승리는 80년세월이 흐른 오늘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신묘한 군사적지략을 길이 전하고있다.

이 전투는 유격전의 요구를 최상의 수준에서 구현하고 목표설정과 시간선택, 불의의 공격 등이 립체적으로 맞물린 빈틈없는 전투였다.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기 위해 1선, 2선, 3선도 모자라 4선으로 국경경비진을 늘여놓은 일제가 북부국경지대에 설치한 경찰서, 경찰관주재소들은 300여개에 달하였다.기동성이 빠른 수많은 무력도 배치해놓았다.
적정과 지형정찰을 깊이있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압록강물결을 타고 흘러내리는것으로 알고있는 떼목으로 다리를 만들어 재빨리 강을 건느도록 하시였다.
강반을 뒤덮은 어둠과 구시물동의 소연한 물소리까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도하를 감싸주어 눈에 쌍심지를 켜고있던 일제군경들은 조금도 기미를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이의 신묘한 지략은 변화된 형세를 순식간에 통찰하시고 공격목표를 이전하신데서도 과시되였다.
무산방향으로 진출하던 한 부대가 베개봉근방에서 적포위에 든 불의의 사태를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혜산방향으로 지목되였던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지점을 보천보로 바꾸도록 하시여 국내진공작전과 함께 포위된 부대구출작전을 동시에 성과적으로 수행하시였다.
보천보를 치면 베개봉쪽에 집중되여있는 적들이 주력부대와 이미 포위된 혁명군부대에 역포위될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포위추격전을 포기하고 현계선에서 철수할수 있다는것과 보천보를 치면 혜산을 치는것 못지 않게 국내에 강한 충격을 줄수 있으므로 국내진공목적역시 원만하게 달성할수 있다고 보신 그이의 명안은 타격지점을 정확히 선정하여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돌이킬수 없는 파멸의 위기를 가져오게 하였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htsh_kkch/127002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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