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령님과 일화(596)

사연깊은 내각결정

(평양 6월 16일발 조선중앙통신)주체44(1955)년 6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안남도일대의 농사형편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그때까지 관개체계가 서지 못한 평원군의 어느 한 논밭머리에 차를 세우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내기철도 다 지났는데 그제야 물동이로 물을 길어다 조금씩 부어주며 꼬창모를 심는 이곳 농민들의 모습을 가슴아프게 바라보시였다.
그들에게 다가가신 수령님께서는 물긷는데가 얼마나 먼가, 하루에 몇동이씩이나 긷는가고 물으시였다. 자기들의 고생을 두고 마음쓰시는 수령님께 한 녀인이 인제는 협동조합이 돼서 일없다고, 이렇게 여럿이 물을 길으니 성수가 난다고 말씀올렸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물동이를 너무 이여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고 생살이 벌겋게 드러난 녀인들의 머리를 살펴보시고는 물긷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머리가 다 헐었겠는가고 하시였다.
녀인들의 물긷는 모습을 보시며 농민들이 겪는 물고생을 헤아려주시는 수령님께 녀인들은 모내기가 끝나면 인차 낫는다고 울먹울먹하며 말씀올렸다.
수령님께서는 무거운 마음을 안으신채 차에 오르시였다.
이날 오전중에 평양에 돌아가셔야 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일정을 바꾸시여 평원에서 증산으로, 온천으로, 강서로 현지지도길을 이어가시며 그때까지 천수답들만 널려있는 그 일대의 모내기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어느 곳에서는 너무 속이 상하시여 꼬창모 한포기를 손에 들고 차에 오르기까지 하신 수령님이시였다.
바로 그 꼬창모가 그날 저녁 내각(당시)성원들이 다 모인 방의 책상우에 놓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들 보라고, 이것이 꼬창모라고, 동무들도 쌀을 먹고 나도 쌀을 먹는다고, 이 쌀을 농민들이 헐하게 생산해야 그것을 먹는 사람의 마음도 편할게 아니겠는가고 갈리신 음성으로 교시하시였다.
그날 저녁 심각한 론의가 밤깊도록 진행되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내각결정이 채택되였다. 결정에는 평남관개2계단공사를 벌리며 그와 동시에 전국적으로 수백개소의 중소규모관개공사와 하천공사를 벌릴데 대한 문제가 명시되여있었다.(끝)

Image credit: https://www.flickr.com/photos/beckys/2891693939/

Related posts: